고향으로 가는 길-15
온통 들풀 세상으로 변해 버린 묵정밭이 보인다. 맞은편 돌담가에 동그랗게 도드라진 수풀이 보이고, 그 앞에는 터를 넓힌 머위 서식지가 보인다. 아무리 잘라내도 뿌리내린 잡목들은 작년보다 더 숫자를 늘렸고, 아랫길을 두고 이어진 밭은 대나무 숲이 차지해 버렸다. 내 친구네 집 뒤란에서부터 올라온 저 대나무숲을 볼 때마다, 저절로 친구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첨대 하나 얻겠다고 갔다가 매번 호되게 야단만 맞고 돌아온 동네 오빠들이 생각난다. 결국 아무도 가져갈 수 없었던 대나무는 마당과 뒤란을 넘어 모든 걸 잠식하는 욕심쟁이가 되어 버렸다.
가만히 고개 들어 초록 너머 무채색 하늘을 보고, 언제나 그리운 섬, 부도를 본다. 그리고 바다를 본다. 숱한 파랑을 스쳐왔으면서, 너른 바다가 보이는 산밭에 머물고 싶었던 아버지 마음은 못 가 본 길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그 파랑을 정면으로 맞서며 건넌 푸른 날들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물 보러 가기를 지금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차마 접을 수 없는 아쉬운 날들만 고개를 휘저을 뿐, 오늘도 하늘은 바다에 수장되어 짙은 침묵으로 여유롭다.
"아버지, 아까 버스가 넘어질까 봐 버스가 기우면 전 반대로 힘을 줬어요."
"..............."
"그랬더니 버스가 다시 반듯하게 섰어요."
"허어, 그래서 버스가 안 미끄러졌구나... 허허허..."
초등학교 3학년때인가, 앙상한 나뭇가지마다 하얀 눈꽃이 함박웃음을 피우던 날, 오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친척 집에 다녀오던 길이었습니다.
빙판 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비탈길을 지날 때마다 한쪽으로 기우는 버스가 넘어질까 봐, 저는 반대편 좌석에 온 힘을 주었지요. 그러느라 땀에 범벅이 된 저를 보시고, 아버지는 너털웃음으로 대답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인자하셔서 화난 모습을 좀처럼 보여 주지 않으셨던 우리 아버지. 우리가 알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을 뒤늦게 느낄 때면, 알 수 없는 설움이 되살아납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가시는 길은 살아온 생애만큼이나 힘겨웠습니다. 매일 들리던 아버지의 신음 소리가 얼마나 참기 힘든 통증이었는지, 아직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아홉 살 막냇동생에게 남몰래 많은 수면제를 사 오게 했다는 얘기를 듣고서야, 그 고통을 잠시 짐작할 뿐이지요. 그러나 이미 그때는 진통제도, 수면제도 아버지 몸속에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긴 투병 중에, 산길을 오를 때면 동네 방파제가 보이고, 멀리서도 바다가 보이는 산밭에 묻어 달라시며 쓸쓸히 웃곤 하셨지요. 당신 가시던 날엔 너무 많은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 우리의 슬픔도 그날의 날씨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많은 비가 내릴 수가 없었지요. 아버지도 집 떠나기 서러워 우시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닷새가 되는 날 새벽에야 맑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였지요. 그리고는 며칠을 가만히 기다리던 꽃상여가 황토 흙 마당에 앉아 있었습니다.
긴 겨울 다 보내고, 봄이 시작할 즈음이면 제 마음은 아버지 무덤으로 갑니다. 솔바람이 산을 타고 울어도 아버지 무덤은 따뜻한 햇살이 친구 되어 드리지요.
작은 산새들의 노래가 있고, 제비꽃과 어릴 적 동생들이 심어둔 나무가 우리가 먹은 나이만큼 자라서 이제 아버지는 외롭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가면 아직도 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옵니다. 먼바다와 아버지 마당을 지키고 있는 들풀을 바라보다가 얼룩진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지요......
*물 보러 가기/ 바다 그물에 고기가 잡혔는지 보러 가는 일(꿈을 은유)
*첨대/대나무 낚시대
단편으로 읽으셔도 무리 없게 설정하였지만
프롤로그를 참고하시면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