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아내
남편 턱에 난 수염을 뽑아보고 싶어요.
족집게로 뽑고 싶어요.
면도해서 말끔했던 얼굴이 거뭇해지는 저녁.
남편 얼굴에 가만히 들이댑니다.
“여보 저 수염 몇 개만 뽑아도 돼요?”
남편은 아마 이런 말을 생전 처음 들었을거에요.
찌그러진 표정을 하고 저를 바라봅니다.
수염을 뽑겠다니, 아니 뭐 이런 사람이 있어! 그런 뜻이겠죠?
그래도 착한 남편은
“그.. 그래요... 하나만 뽑아요”
벌써 마음은 기뻤고 족집게로 쑥 뽑아요. “아얏!”
남편의 아얏 소리는 안 들려요.
뽑아든 수염털을 전등빛 밝은 데로 가 눈높이 위로 들어올리고 유심히 바라봅니다.
“여보 이것 좀 보세요.
겉으로 나온 건 1mm인데 뿌리가 이렇게나 길다니.
진짜 신기하다.
뿌리 끝은 이렇게 부들부들하고 촉촉해요. 살에 닿아보면 촉촉해요.
여보도 살에 한번 대 보실래요?”
그런 저를 봤다면 누군가 떠올랐을지도 몰라요.
골룸... 마이 프레셔스..........
뽑아든 수염털을 한참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다시 희번득해진 눈으로 남편에게 향합니다.
“여보 하나만 더 뽑을게요.
아니다. 1제곱센티미터를 뽑게 해 주세요”
“안 돼요. 얼마나 아픈데요”
“히잉 ”
실망한 저한테 미안했는지 남편은 뜻밖의 말을 합니다.
“얼굴은 아파서 안 되고
대신 제 오른쪽 다리를 내줄게요. 이 다리털 다 뽑아요”
그 순간
꽃들이 사방에서 팡팡 터지고
꽃가루가 흩날리는 환상을 경험합니다.
샤랄라라랄라
남편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너~무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 오른쪽 다리를 내주겠다니! ’
‘ 엄지발가락에 난 몇개 털도 아니고 다리 하나 전체를 내주겠다니! ’
‘ 내가 털 뽑는 거 좋아하는 줄 오해하고 아파도 참고 다리 하나를 내주겠다니! ’
‘ 뿌에엥 ’
그러나 저는 변태가 아닙니다.
수염 몇 개만 뽑겠다는 거지 뭐 그렇게 다리털 전체 하나하나 뽑아가며 좋아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남편이 오해하고 다리하나를 내주겠다는 그 큰 사랑에 큰 감동을 받았지만
저 막 그렇게 털 뽑으며 좋아하는 사람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이미 늦었나봐요...
남편은
“아니에요. 여보는 좀.. 변태끼가 좀 있는 거 같아요”
**다음에는 새학년이 되어 고군분투하는 아들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