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포아내
아내인 저는 캐릭터가 두 개입니다.
밖에서 저는 ‘바보’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면 말귀를 한번에 잘 못알아들어요.
내가 말할 차례에서는 “네? 에? 어버버...”하며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고요.
그제 도서관에 갔다 나왔는데
제 차 앞에 누가 바짝 주차를 해 놓아 빠져나올 수가 없었어요.
도로 도서관에 갔다가 문 닫을 때쯤 나와보니 그 차가 없더라고요.
휴 다행이다...
이 얘길 들은 동생은 화가 났어요.
“그게 무슨 다행이야! 당연히 전화해서 차 빼 달라고 해야지!
어휴, 언니는 똑똑한 것 같다가도 어떨 때 보면 좀 바보 같아!”
네. 제가 봐도 해야 할 말 못하고
“어버버... 에?”나 하고 있으니 바보 같아요.
그러나 집에 와서는요 아주 딴판입니다.
“여보! 젖은 빨래거리는 펼쳐놓아야 한댔지요? 안 그럼 곰팡이 핀다구요!”
“여보! 아이스크림 먹고 난 막대기는 제발 휴지통에 버려요.
소파 밑에 숨겨놓지 말고요!”
“한별아! 너도 학교 갔다오면 가방은 네 방에 둬. 거실에 두지 말고!”
오늘도 남편과 아들에게 큰소리 뻥뻥합니다.
거실에서 마른 빨래를 개던 남편과 아들이 서로 마주보며 소곤거립니다.
“한별아, 엄마 또 여포짓 한다”
“여포짓? 그게 뭐에요?”
“뭐긴 뭐야. 엄마가 저러는걸 보고 딱 여포짓 한다고 하는 거야.
밖에서는 남한테 찍소리도 못하고
집에서 이렇게 너하고 나만 잡는거 아니냐
집에다 CCTV를 설치하고 그걸 사람들한테 보여줘야해”
“맞아. 엄마는 우리한테만 뭐라고 해”
행동과 말투는 소곤거리듯 말하지만 제 귀에 다 들리게끔 하지요.
“여보 밖에서도 한번 지금처럼 해봐요.
사람들은 여보가 천사인 줄 알 텐데 우리한테 하는 것처럼 밖에서도 한번 해봐요.
사람들 반응이 너무 궁금해요”
네 여포짓이 정확히 무슨뜻인지는 모르지만
이게 여포짓이면 여포짓인거지요.
하지만 밖에서 이랬다가는 아무도 받아주는 사람이 없는 걸요.
누가 이런 저를 받아주겠어요
저도 여보랑 아들이니까 믿고 그러는거에요...
“그래 한별아 엄마가 좀 불쌍한 거 같다.
엄마가 어디 나가서 큰소리 한번 쳐보겠니. 집에서나 그러는 거니까 우리가 좀 봐 주자.”
“그래요”
고마워요 우리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