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제 겨울잠바 좀 새 걸로 사주세요"
12월의 달력
오늘 날짜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 있습니다.
여포아내 부부의 결혼기념일이거든요.
작년에는 달력에 표시를 안 해 두었다가 둘 다 그 날짜를 잊고 그냥 지나갔어요.
한참 뒤에서야 결혼기념일을 잊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연로하신 우리 부모님도 결혼기념일에는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라도 사 드시는데 우리가 잊었다니!!
그러고 다음 해 달력은 받자마자 날짜에 표시를 진하게 해 두었습니다.
“ 여보~ 오늘 우리 결혼기념일이에요 ”
“ 좋아요, 오늘은 외식이다! 퇴근할 때 전화할 테니 나와요.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갑시다 ”
" 야호 "
어둑해진 저녁 퇴근시간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 여보, 지금 거의 다 와 가니까 한별이랑 내려오세요 "
한별이와 저는 내려와서 주차장에서 조금 기다렸더니 남편이 도착했습니다.
우리 셋은 완전체가 되었습니다.
" 여보 우리 오늘 어디 가요? "
" 가까운 데로 갈까요? "
" 네 좋아요 "
얼마 전 우리는 집 앞 가까운 사거리에 새로운 고깃집이 생겼거든요. 대패삼겹살 고깃집이요.
우리는 그곳에 가서 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 오늘은 우리 가정이 탄생한 가정탄생기념일~~!! ”
“ 네, 우리가 결혼하고 한별이도 태어나 더욱 행복해진 가정탄생기념일~~!! ”
" 맞아요. 그래서 저는 결혼기념일보다 가정탄생기념일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
결혼기념일에 집 앞에서 대패삼겹살을 먹지만 우리는 즐거웠습니다.
다들 기분이 업되어 있고 서로 말하고 싶어 합니다.
“ 여보, 우리 가정이 이렇게 화목한 건 여보가 가장으로서 집안을 잘 이끌어준 덕분이에요.
고맙습니다 우리 가장님~ ”
“ 여보가 집안 살림도 알뜰하게 잘하고 한별이도 잘 키워준 덕분이죠. 제가 고마워요 ”
“ 그럼 나는? 나는 뭐를 했나? ”
“ 한별이 너는 아무것도 안 해도 존재만으로 우리 가정의 기쁨이지 ”
얇은 대패삼겹살을 구워 쌈채소에 싸 먹고, 얇은 대패목살은 기름이 너무 없어 태워먹기도 하고,
버섯, 고구마도 감자도 가지도 종류대로 가져와 골고루 구워 먹었습니다.
식당 고깃집의 손님도 많고 왁자지껄 시끄러운 분위기가 우리의 기분을 더 올려주네요.
아 잘 먹었습니다.
음식을 맛있게 배부르게 잘 먹고는 각자 벗어둔 점퍼를 다시 입고 식당을 나섭니다.
" 아휴~ 엄마 밖은 추워요 "
" 그러게. 잠바 잘 입고 모자도 써 "
모두 점퍼 지퍼를 목 끝까지 닫아 올리고 모자도 쓰고 걸어갑니다.
" 참 여보, 나 이제 이 잠바 그만 입어야겠어요!
그동안 나도 이 잠바가 좋아서 잘 입었지만 낡기도 했고, 너무 오래 입었어.
검정색이면 모르겠는데 색깔도 파란색이라 사람들이
‘ 쟤는 같은 옷을 도대체 몇 년째 입는 거야 ’라고 할 거 같애 ”
남편은 지금 입고 있는 파란 점퍼를 가리키며 말하는 거에요.
점퍼가 예쁘기도 하면서 따뜻해요. 모자에 연결된 얼굴 가리개부분은 따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얼굴 보온이 되어서 그 점을 남편이 특히 좋아합니다.
남편이 마음에 들어해서 같은 걸로 아버님께도 사드렸어요.
그래서 겨울에 밖에서 아버님 어머님과 만날 때면 같은 점퍼를 입고 나와 커플룩이 될 때가 많아 저 혼자 속으로 흐뭇해했고요.
" 아 그런가요. 근데 이 잠바 몇 년 입은 거예요? 저도 궁금한데요? "
" 잠깐, 핸드폰 갤러리에서 사진을 보면 알아요. 언제부터 이 옷이 나왔는지 보면 돼! "
남편은 가던 길을 멈추고 갤러리를 뒤져봅니다.
" 음.. 4년 전 사진에도 이 잠바가 나오고요... 5년 전에도 나오네요.
흐음.. 6년 전에도 이 잠바가 나오고요.. 핫.. 7년 전에도 나와요!
설마 8년은 아니겠지??
8년 전을 찾아보자... 설마..
으앗! 여보 이거 봐요! 8년 전 사진에도 이 잠바가 있어요!!! "
" 에헤~? 그렇게나 오래됐어요? "
그럴 수가 있나!
점퍼를 8년이나 입었다는 사실에 모두 놀라고 대단하다 싶어서 우리 셋은 배꼽을 잡고 비틀거리며 웃었습니다.
남편은 이 파란 점퍼를 적어도 8년은 입었다는 것을 확인하자 더욱 당당하고 힘찬 목소리를 말합니다.
" 여보, 나 이제 이거 버릴게.
특히 여기 얼굴 턱 닿는 부분이 수염 때문에 닳아서 보풀이 일어났어요. 이거 봐요 "
" 그렇네요. 네 여보. 이번 겨울까지는 입고 이 잠바는 그만 입어요 "
이제 그만 입으라는 저의 확답을 들어서 남편은 기분이 확 좋아졌습니다.
" Yeah~~ 이제 이 파란 잠바 그만 입는다. 룰루~~ 여보 다음에는 잠바 검정색으로 사 주세요 "
" ...... "
" 저기... 여보?? "
" 근데.. 그 8년 전 이 잠바 살 때요...
옷이 좋고 싸서 그때 같은 잠바 2개를 샀어요.. "
콰광!
" 에~ 헤? 뭐라고요~?!! "
" 여보, 나도 이게 검정색이면 나도 입을 수 있긴 해요. 나도 이 잠바가 좋긴 한데 파란색이라 튀어서 그래요 "
" 한별아, 엄마가 잠바를 2개나 샀단다.
이 잠바를 8년이나 입었는데 이제 또 8년을 더 입어야 하면 16년을 입어야 하는 건데 이거 어떡하냐?
사람들이 이제 아빠는 맨날 똑같은 옷만 입는다고 뭐라고 할 거 같어.
응 한별아?
아빠가 똑같은 잠바를 16년 입을 수는 없으니까
하나 남은 잠바는 네가 빨리 커서 네가 입어라! 응? "
이때 이 모든 대화를 듣던 한별이가 솔로몬처럼 한 마디 했습니다.
" 아빠? 아빠가 지금 회사 다닌 지가 얼마 되었죠? "
" 여기 다닌 지? 여기 다닌 지는 2년 됐지? "
헉! 남편은 2년 전 이 회사로 이직을 하였거든요!
" 그럼 아빠 회사 사람들은 이 잠바를 2년만 본 거네요? "
" 그... 그렇..지? "
" 그럼 내년에 아빠가 새거 파란 잠바를 입어도 사람들은 3년째인 줄로 알겠네요? "
" 그... 그..렇게 되지..? "
" 그럼 내년에 입으셔도 되겠네요 "
후덜덜덜...
남편은 미처 생각지 못한 한별이의 반격에 어쩔 줄 몰라 머리를 굴리다가 간신히 이 한 마디를 남겼습니다.
바로 그 파란 잠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