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엄마랑 아빠랑 살아요
사랑하는 손자 하성이에게
작년 이맘때는 맑고 높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가을이었어. 올해 가을은 장마와 우중충한 날씨로 파란 하늘을 보기가 어렵구나. 지난 일요일에는 온 가족이 5km 마라톤에 도전해서 성공하였더구나. 그 날도 날씨가 흐렸지. 달리기할 때는 햇볕이 쨍쨍거리는 것보다 흐린 날이 덜 지칠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처음 하는 달리기인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뛰어주어서 정말 대단했어. 하유도 폴짝폴짝 뛰는 모습이 귀여웠단다. 할미가 보내 준 축하금으로 먹고 싶다던 삼겹살을 맛있게 먹었는지 궁금하구나. 할머니와 영상 통화할 때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었잖아. 요즘 자주 먹고 무척 좋아한다던 초밥이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삼겹살이라고 해서 조금 우스웠단다. 무슨 일이든 어려운 고비가 항상 나타나기도 해. 그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는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구나. 둘 다 그런 멋진 형제로 자라나길 할미가 기도할게.
오늘 들려줄 이야기는 2년 2개월의 할미 집 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 있었던 일이야. 2023년 2월 27일이야. 다음 날인 28일에는 증조할아버지 기일이어서 할미가 제사 음식을 만들어야 해서 27일에 데려다주기로 했단다.
점심을 먹고 나서 엄마 집으로 갈 준비를 하였지. 무엇을 챙겨서 갈까 망설였어. 할미 집에 있는 하성이 물건을 한꺼번에 다 가지고 갈 수는 없었거든. 하성이가 가장 좋아하는 공룡과 바다생물, 그리고 곤충을 가져가기로 했지. 그땐 그 장난감만 있으면 온종일 잘 놀았거든. 할머니는 하성이가 공부하던 책을 챙겼지. 하성이의 양손에 곤충통과 바다생물 통을 들고 할머니는 공룡통과 공부 책을 두 손에 들고 출발했지. 옷이나 책은 엄마 집에도 있으니 그건 천천히 가져가면 되었단다.
엄마 집에 도착하니 엄마와 동생 하유가 현관까지 나와서 반겨주더구나. 가져간 장난감으로 놀기도 하고 동생과도 뛰어다니며 놀기도 했어. 하성이는 할머니와 같이 앉아서 놀고 하유는 엄마 옆에 앉아서 놀고 있었어. 그때 동생 하유에게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지.
“하유야, 할머니 옆에 와서 같이 놀자.”
“할머니는 하성이 형아 할머니잖아.”
“아니야. 엄마도 하성이, 하유 엄마인 것처럼 할머니도 하성이 할머니도 되고 하유 할머니도 돼.”
하성이가 할머니 집에 오래 살다가 보니 엄마랑 살았던 하유 생각에는 할머니가 하성이 할머니인 줄만 알았던 거야. 따로따로 살았으니 4살 하유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거야. 하유도 차츰 할머니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지. 그때부터 너희 형제에게 할머니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하는 재미있고 우스운 일들도 많았지.
3월이 되면 하성이가 유치원에 입학해야 했어. 엄마가 준비해 둔 유치원복을 입혀보았지. 제법 어린이티가 나더구나. 너무 귀여워서 이리 찰칵 저리 찰칵 사진으로 남겨두었지. 너의 천만 금짜리 눈웃음은 정말 할미 마음을 녹게 했지. 저녁밥을 먹고 씻기고 난 후 할머니가 말했지.
“하성아, 이제 할머니 갈 테니 엄마랑 하유랑 같이 자렴.”
“아니에요. 할머니 가지 마세요. 으앙으앙. 나도 같이 갈 거예요. 으앙으앙.”
엄마가 있으니 당연히 할머니와 쉽게 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우리가 같이 지낸 시간이 너와 나를 연결하는 소중한 고리였나 봐. 현관까지 나왔다가 우는 네 소리가 할미의 가슴을 미어지게 해서 다시 들어갔단다.
“그래, 그러면 할머니랑 자자.”
엄마랑 하유는 거실에 있고 하성이를 안고 안방으로 갔지. 엄마 집에는 어부바하는 포대기가 없어서 업을 수가 없었어. 가슴에 꼭 안고 손을 꼭 잡고 자장가를 불러주었지. 20여 분이 지나니까 새록새록 잠이 들기 시작하더구나. 하성이를 잠자는 방으로 옮기고 난 뒤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단다.
그리고 3월부터 할미는 일요일만 빼고 계속 엄마 집으로 가서 너희 형제들을 돌봐 주었단다. 할미 집에서 지낼 때처럼 놀이와 공부와 목욕 그리고 책 읽기와 잠자기까지 할미와 함께였단다. 잘 기억날지 안 날지 모르는 할미 집 살이 26개월의 추억을 할머니가 하성이에게 선물하고 싶었단다. 그때처럼 항상 웃으며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하성이가 되길 바란다. 사랑해.
2025년 10월 21일
할미가
- 작가님들께 드리는 글 -
‘보물 1호 손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할미 집에 처음 온 날부터 엄마 집으로 돌아간 날까지 30화로 브런치북 연재를 마쳤습니다. 지금까지 작가님들께서 손자 하성이의 성장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보시며 관심과 애정을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12월경에 ‘보물 1호 손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2’로 찾아뵐 예정입니다. 2편에서는 아이들이 매주 금요일마다 할미 집에 와서 1박 2일간 예쁜 추억을 쌓은 이야기입니다. 그때도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보내 주신 작가님들의 관심과 사랑에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