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광수변공원을 걸으며
며칠 전 병원에 약을 처방받으러 가는 길에 현수막 하나를 보게 되었다. ‘찾아가는 문화콘서트’가 달서구 도원동에 있는 월광 수변공원에서 열린다는 문구였다. 지난해 10월에도 다녀온 적이 있는 콘서트였다. 차를 갓길에 세워놓고 자세히 읽어보니 10월 3일 오후 3시에 콘서트가 시작된다고 적혀 있었다.
3일 아침에 일어나니 바깥에는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오후가 되면 비가 그치겠거니 하고 기다려 보았다. 2시가 지나도 여전히 비는 그칠 기미가 없어 보였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행사를 취소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만약 행사가 취소되었으면 수변공원을 우산 쓰고 산책하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 같아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편을 오후에 출근시키고 서둘러 채비를 하였다. 혹시나 추울까 봐 얇은 패딩을 걸쳐 입고 출발했다.
운전해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다. 예상과 달리 행사는 진행 중이었다. 비가 세차게 몰아치는 데에도 불구하고 천막 안에는 사람이 가득 찼다. 천막 주변에는 우산을 쓰고 관람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조금 늦게 가는 바람에 앞부분 콘서트는 놓쳤지만, 천막 아래 비어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작곡가 박태준 기념사업회와 함께하는 ‘찾아가는 문화콘서트’는 대구시 달서구가 후원하는 행사이다. 올해가 4회째를 맞는다. 박태준 작곡가는 대구 출신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동무 생각’을 작곡한 분이다. 그 외에도 가을밤, 오빠 생각 등 많은 동요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도 박태준 작곡가 흉상 앞에서 마련되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 무대에서는 달서 은빛 시니어합창단의 합창이 펼쳐지고 있었다. 곧이어 2부에서는 가을밤과 오빠 생각을 김형준 바리톤이 부르자 객석에서도 모두 따라부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초등학교 다닐 때 불렀던 동요인 데다가 손자를 키울 때도 늘 불러주던 동요라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동심으로 돌아가 큰 소리로 따라 불렀다.
행사가 끝나니 오후 4시 40분이 다 되었다. 비는 아직도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월광 수변공원은 사계절 다양한 나무와 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공원에는 가우라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사진을 한 장 찍은 뒤 우산을 쓰고 수변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풍경이 마치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같았다.
어릴 때는 비 내리는 게 그렇게 좋아 우산도 안 쓰고 친구와 이리저리 뛰어다니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비가 오면 밖에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콘서트 보러 나온 김에 많은 사람이 걷는 빗길을 나도 함께 따라 걸으니 내 안의 세포가 살아 숨 쉬는 듯했다. 혼자여도 좋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고 갖가지 표정을 한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다. 강인원의 ‘비 오는 날 수채화’ 노래처럼 세상 사람 모두 다 도화지 속에 그려진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다. 내가 나에게 준 선물 같은 시간이 소중하고 행복하다.
개인적인 일(시험기간)로 이 글의 댓글창은 닫아둡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