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이 사라지는 순간, 보고 싶은 얼굴

<당신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 누구를 찾으실 건가요?>

by 카이

내가 근무하는 일본 요양원에는 다양한 국적의 노인분들이 들렀다 가는 곳인 것 같다. 일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어르신, 한국에서 온 한국인 어르신, 중국 국적의 어르신, 베트남 국적의 어르신도 몇 분 있으며, 브라질 국적의 어르신도 있다. 작년 초 내가 근무하는 일본 요양원에 60대 베트남 남성 어르신이 잠시 입소했던 적이 있다.




베트남 어르신 응우옌


일본에는 의외로 베트남 국적의 사람들이 많다. 최근에는 산업실습생의 신분으로 20대가 많이 일본으로 입국하고 있다. 그리고 60대 이상도 상당히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베트남 내전으로 인해 난민으로 1980년대 온 사람들이다.


응우옌 어르신도 아마 그 시기에 일본으로 오셨을 것이다. 아주 잠시 이곳에 오신 분이라, 정확한 사연은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그렇게 추측만 해보았을 뿐이다. 물론 정보를 정확히 알아도 이 글에서는 공개해서는 안된다.


이 분은 잠시동안 내가 근무하는 요양원에서 지낼 것이라 했다. 단 며칠 동안만 내가 근무하는 요양원에서 머문 후 베트남으로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병원에서 오랜 기간 생활하신 후 퇴원 하셨고 곧 베트남으로 가실 것이라 했다. 베트남으로 떠나시기 전, 잠시 동안 지낼 곳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분은 일본에서 인생의 절반이상의 시기를 보내시고, 60대 말이 되어 암 판정을 받으셨다. 그동안 일본에서 번 돈은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에게 대부분을 보냈으며, 베트남에 딸도 있다고 했다. 일본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지내셨는데, 베트남에 딸이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잘 이해가 되진 않았지만 일단 그렇다고 한다.


일본의 병원에서 오랜 기간의 입원치료를 진행했으나, 이미 암 말기 상태이기에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 제법 발달한 의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일본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하니, 더 이상 기댈 곳은 없을 것이다. 담담하게 본인의 운명을 받아들인 듯 보였다.


생애의 끝자락인 지금 마지막 삶의 순간은 베트남으로 가서 딸과 함께 마지막 남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한다. 그런 연유로 내가 일하는 요양원에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의 짧은 인연이 닿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에서 지냈던 어르신도 생활은 궁핍했고, 베트남에서 살고 있는 딸의 생활도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들었었다. 때문에 딸은 직접 일본에 아버지를 데리러 올 수 있는 형편이 아닌 듯했다.


아버지를 만나러 일본에 올 수 없는 딸, 오직 딸을 만나기 위해 생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르려 하는 아버지의 사연이 있었다.





난리가 나버렸던 야간 근무


응우옌 어르신이 요양원에 오신 날, 나는 야간근무로 출근을 했다. 그리고 이 어르신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을 인수인계받았다.


이 어르신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이분의 성함은 발음하기도 힘든 독특한 베트남 발음인 '응우옌'이라고 했다. 간단하게 일본어로 '곤니찌와(안녕하세요)'라고 하니 고개만 끄덕이셨다.


사실 난 이날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하면서 베트남 인사를 검색해 보았다. 파파고에서는 '신짜오'라는 단어가 나왔었다. 난 다시 이 어르신께 '신짜오'라고 인사를 하니, '신짜오, 신짜오' 라며 내 인사에 화답하는 듯 미소를 지으시며 좋아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이 어르신은 하루에 한 번 진통제를 투여했다. 의사의 처방에 따라, 하루에 딱 한 번만 진통제를 투여한다고 한다. 보통 오전에 담당 간호사의 처치로 진통제를 투여한다고 했다. 하루에 한 번 투여하지만, 약효는 24시간을 가지 못한다고 한다.


진통제 성분은 너무 강한 약성분이기에 하루에 두 차례 투여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약 성분이기에 법적으로 금지가 되어있는 것일까?


24시간을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 때문에 새벽시간에 약효가 떨어지면, 아주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니 알고 있으라 인수인계를 받았다. 나는 무심코 그러려니 ‘알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단순히 무심코 대답할 정도의 통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던 건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날 야간 근무시간에 정말 난리가 나버리고 말았다.


새벽 3시 정도 되었을까? 응우옌 어르신이 주무시던 개인실의 문이 사납게 벌컥 열렸다. 그리고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있는 모습의 응우옌 어르신이 거의 기어 나오시다시피 거실로 나왔다. 방에서 거실로 나온 어르신은 광장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악~!! 헉헉~!!"


응우옌 어르신은 내 눈과 잠시 마주치는 듯했으나 이내 풀려버린 듯한 눈동자는 이내 허공을 향했고, 본인의 배를 부여잡고 굉장히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헉! 뭐지? 이게 인수인계 때 들었던 그 고통인가? 아니 이건, 너무 심한데? 지금 돌아가시는 거 아니야?’


나는 그 시각 그분이 진짜로 숨을 거두는 줄 알았다.


나는 비상전화로 간호사에게 '지금 이러다 정말 죽는 것 아닌지?' 라며 비상 연락을 했다. 내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이 상황은 매일 새벽 발생하는 상황이니 나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어르신께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나에게 설명했다.


나는 '여기가 터미널 병동도 아니고 이렇게 심각한 분을 병원도 아닌 이곳 요양원으로 데리고 오면 어쩌냐!' 며 따졌다. 나는 배를 부여잡고 있는 이 어르신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생이 사라지는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얼굴


어르신은 한참을 고통에 울부짖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무력감과 안쓰러움에 눈물이 맺혔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나는 그저 어르신의 한쪽 손을 꼭 쥐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와중에 응우옌 어르신은 숨을 헐떡거리며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이 와중에 어딘가에 전화를 하시려는 건가? 뭐 하시는 거지? 뭘 찾고 계시는 거지?'


스마트폰을 한참 만지작 거리시던 어르신은 이내 원하는 무언가를 끝내 찾으신 듯 보였다. 응우옌 어르신은 눈물을 흘리며 그리고 숨을 헐떡거리시며 본인의 스마트폰을 한참 바라보셨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그 남성은 지쳐서 소파에 잠들었다. 나는 아까 스마트폰으로 뭘 그리 급하게 찾았나 궁금해서 어르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슬쩍 보았다.


20대 여성의 사진이 보였다.


'누구지? 그 난리통에 웬 여자 사진을 보고 있었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베트남에 딸을 만나러 간다고 들었는데, 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어르신께 물어보니, 그 사진 속 여성은 역시나 이 어르신의 막내딸이었다.


아마도...


'그 순간이 본인의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하고 딸의 사진을 보며 눈을 감으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응우옌 어르신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딸과 함께 보내기 위해 일본에서 베트남으로 가셨다. 그리고 정말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지막 남은 생을 딸과 함께 보내다 딸의 곁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정성껏 손으로 베트남어로 편지를 적어 사진으로 보내왔다. 내가 일하는 곳에는 베트남 출신의 요양보호사가 여러 명 있기 때문에 번역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편지의 내용은, 아버지가 베트남으로 오셔서 본인 곁에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에서는 모든 상세한 내용을 적을 수 없다. 그러나 딸의 표현처럼, 요양원에서는 정말 다방면으로 많이 노력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당신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 누구를 찾으실 건가요?


정말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여러 가지를 되돌아보게 되었으며, 내 주위의 사람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내 생의 마지막에 누구를 찾게 될까?


나는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누가 가장 보고 싶을까?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은 어떤가요?


당신의 생의 마지막 순간에 누구를 찾으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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