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외롭던 당신에게 드리는 마지막 인사>
항상 외로우셨던 송명순 할머니는 내게 충청도가 고향이라고 말하셨었다.
할머니는 40세에 홀로 일본에 오셨다고 했다. 그 후에 줄곧 일본에서 생활하신 분이다. 한국에는 가끔 한 번씩 가시긴 했으나, 거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계속 일을 하셨다고 했다. 일본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 한국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셨다고 했다.
40세 건강하실 때, 일본에 오신 할머니는 연세가 작년에 85세가 되셨다. 75세를 넘기던 시절부터는 거동이 불편해져서 일본의 노인 시설인 데이서비스에 다니시기 시작하셨다. 그 후 몇 년간 데이서비스에 다니셨다. 그리고 79세가 되시던 해부터 신체는 더 쇠약해져서 요양원에 입소하셔서 계속 요양원에서 생활을 이어나가셨다.
할머니는 홀로 생활하셨기 때문에 일본에 가족이 없으셨다. 때문에 거동이 불편해지신 이후에는 내가 할머니의 댁으로 가서 방문요양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요양원에 입소하기 직전에는 혼자서 침대에서 내려오시는 것조차도 못하셨기에 요양원에 입소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처음 만나 뵈었던 때에는 치매는 없으셨으나 치매가 발현되고 점점 그 상태가 심해지셨다. 할머니는 치매 초기 상태가 시작된 이후에 내게 한국에 있는 당신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하시기 시작했다. 치매가 발현되기 전에는 전혀 가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었다.
치매 초기 상태가 되시고,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꺼내셨을 때 사실 난 조금 놀랐었다. 본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으셨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묻는 것도 실례가 될 것 같아서 나는 그동안 가족관계에 대해서 묻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할머니가 본인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신 그날 이후부터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 빈도는 점점 늘어났다. 아들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지만, 구체적으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언젠간 할머니의 서랍을 정리할 때, 매우 젊은 시절의 할머니와 10대 후반으로 보이던 남자가 있던 사진을 발견했었다. 아마도 그 청년이 아들이 아닐까 추측만 할 뿐이었다. 아마도 할머니의 기억엔 그 시절의 아들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말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짝사랑이 아니었을까. 치매가 발현된 이후에 마음 저변에 숨겨두었던 감정이 겉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내가 모셨던 약 7년의 세월 동안 한국의 아들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이 할머니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숨어서 사셨던 것도 아니고, 아들 혹은 한국의 가족들이 할머니를 만나려고 하면 언제든지 연락이 닿고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일본은 그렇게 먼 나라도 아니고, 요즘에는 정부의 전산시스템도 매우 잘 되어있다. 정부기관들과의 연락도 꽤나 잘 되는 편이며, 일본 내의 민단(民団) 등의 한국인 네트워크도 꽤나 잘 되어 있다. 나는 그저 그 가족 나름의 가정사가 있겠지 라며 생각만 할 뿐이었다.
치매 증상이 초기를 넘어서 중기로 넘어가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항상 본인 방문을 열어두라고 말씀하셨다.
"아들이 나를 만나러 오늘 오기로 했어. 한국에서 올 거야"
라고 하시며 본인의 방문을 항상 열어 두라고 하셨다.
아들이 나를 찾아왔는데 나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가버리면 안 된다고 하셨다. 아들의 눈에 당신이 잘 보이도록, 당신의 눈에 아들이 잘 보이도록 항상 방문을 열어두라고 내게 당부하셨다.
행여나 실수로라도 할머니의 방문을 닫을 때면, 불같이 문 너머에서 화를 내셨다. 문을 항상 열어두라며 큰 소리로 화를 내셨다.
"아들이 왔는데, 나를 못 찾고 가면 어쩌려고 문을 닫는 거니!"
라며 불같이 내게 화를 내셨다. 그리곤 열린 방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시며 아들을 기다리셨다.
하염없이 몇 년을 방문만 바라보시던 할머니는, 얼마 전 정월 초하루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아들은 결국 만나지 못하고 하늘로 먼 길을 떠나셨다.
찾아오는 가족 하나 없이...
추운 겨울 홀로 그렇게 가셨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설날인데, 할머니는 홀로 먼 길을 떠나셨다.
홀로 외롭던 당신에게 드리는 마지막 인사.
다음 생에는...
방 문만 바라보고 살지 말고,
방 안에서 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사시오.
다음 생을 마칠 땐, 설날에는 가지 마시오.
설은 너무 춥소. 몸도 마음도 너무 춥소.
설에는 아들과 손주들에게 세배도 받고, 세뱃돈도 주며 그렇게 보내시오.
자식들이 끓인 떡국도 한 그릇 자시고 봄에 가시오.
그때는,
외로이 혼자 떠나지 말고, 가족들 배웅받으며 가시오.
그때는,
남의 나라 말고 당신 고향 서산에서.
따뜻한 봄날에 가시오.
그게 좋지 않겠소?
그렇게 내가 빌어 드리리다.
내가 당신 대신 빌어드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