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지원, 두 번째 사이클

by 이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로펌 지원 시즌이 시작된다.


영국 로스쿨은 미국과 달리 학부 과정에 있다.

그러다 보니 사회생활을 해본 지원자들이 적고,

채용 과정도 서류전형은 기본이고

온라인 적성, 논리테스트, 비디오 인터뷰,

그룹토론, 케이스 스터디에 Writing test까지

적게는 3단계, 많게는 4단계를 거쳐야

최종 인터뷰를 할 수 있다.

소위 filtering이 지나치게 많다.


작년 첫 번째 사이클은

1학년 성적만으로 지원했더니 서류부터 떨어졌다.

한국 중고등학교 성적은 평가하기

어렵다는 피드백이 함께 왔다.


이제는 정식 졸업생이 되어

영국 학교의 학위와 성적을 자신 있게 기재했다.

덕분인지 서류를 통과하는 곳이 확실히 늘었다.


하지만 이번엔 'Watson Glaser'라는 장벽이

기다리고 있었다.

논리력과 판단력을 테스트하는 온라인 시험으로,

많은 로펌들이 서류 1차 통과 후 이 시험을 요구했다.

논리력 테스트라 솔직히 자신 있었다.

비슷한 류의 테스트에서

나름 꽤 괜찮은 결과를 늘 받아왔기 때문이다.

연습 시험에서는 늘 90% 이상의 점수를 받았고,

실제 시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단계로 좀처럼 넘어가지 않았다.

정답도, 점수도 공개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

나는 계속해서 탈락 통보를 받아야 했다.


어떤 로펌은 간단한 결과지를 보내주기도 했는데,

거기엔 97%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이번엔 됐구나,

당연히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며칠 뒤 도착한 메일.

“We are sorry to inform you...”


그 한 줄에 무너졌다.

억울했다.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그렇게 발버둥 쳤고,

외로움과 공포와 싸우며 여기까지 버텼는데,

익명으로 치러지는 온라인 테스트 하나가

내 앞길을 막고 있다는 사실이 허무했다.


코로나 때문에 일부 로펌은

재학생에게만 기회를 주고 있었고,

원서를 낼 수 있는 곳 자체가 많지 않았기에

더 속상했다.


Watson Glaser는 여전히 나에겐 블랙박스다.

영국 친구들에게도 문제를 보여주며

같이 풀어보자 했더니,

걔들도 정답이 뭔지 모르겠단다.


똑같은 문제에 같은 답을 했는데,

어떤 로펌은 통과시키고

다른 곳은 탈락시키는 걸 보면,

이게 정답을 찾는 시험이 맞긴 한 걸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단순한 적성검사 같은 건지.

아니면, 그저 그 단계에서 다시 검토한

내 원서가 끌리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두 번째 사이클은 또다시

무더기 rejection으로 끝났다.


First를 받기 위해 그렇게 애썼고,

외로움과 공포를 견디며 버텼는데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온라인 테스트에

발목이 잡힌 기분이었다.

도대체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기도 전에

뭐 이리 장애물들이 많은지

정말 억울했고, 서럽고,

잠깐은 ‘이 길이 맞는 걸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을의 입장이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리고 지금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당장 눈앞의 시험뿐이었다.

기회를 만들고 싶다면

결국 다시 내 자리를 지켜야 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그렇게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LPC 첫 번째 학기의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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