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응급실 체험

아프지 말자, 제발

by 이음

락다운과 시험 준비가 겹치면서

몸 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다.


어느 날 새벽,

갑자기 속이 뒤집히더니 구토가 멈추지 않았다.

속이 쓰려 말그대로 데굴데굴 굴렀다.


급성 위염 같았다.

병원에 가서 링거라도 맞아야 할 것 같은데,

락다운 중이라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몸이 아프고 힘든 것도 괴로운데,

어디에도 갈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서럽게 느껴졌다.


오전 내내 겨우 버텼지만

상태는 더 나빠졌고,

가까운 병원에 전화했더니

NHS 111 응급 콜을 하라고 한다.


속이 뒤집히는 걸 참아가며 전화를 했는데

이름, 국적, 생년월일, 집주소...

담당자가 계속 바뀌면서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수액을 맞아야 할 것 같아요.”

애타게 증상을 설명했지만 오는 답은 그저

“심각한 상황은 아니니 2~3시간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하세요.“ 였다.


하… 그 말 듣고 화장실 바닥에서

쭈그리고 몇 시간을 버텼다.

결국 다시 응급콜을 걸었다.

너무 아파서 엉엉 울며

진짜 힘들다 했더니

코로나 때문에 병원엔 함부로 오면

안 되니 간호사를 보내겠단다.


30분쯤 지났을까,

기숙사 앞에서 앰뷸런스 소리가 울리고,

간호사들이 비상키로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혈압을 재고 피를 뽑고, 진찰을 하더니

응급실로 가야 한단다.


근데… 정말 어이가 없었다.

의식이 있는 상태라

앰뷸런스는 못 태워준단다.

우버를 부르라는데,

혼자 걷는 것도 힘들고 계속 토하는데

어떻게 우버를 타냐고.


게다가 응급실도 코로나 때문에

이 정도 증상으로는 10시간 이상 대기해야 하고,

기다리다 오히려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다고 했다.

영국 응급실은 피가 철철 흐르고 있거나

생명이 위급해야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고.


“약 먹고 집에서 버티세요.”

이게 기숙사 방을 방문한

간호사들의 결론이었다.


앰블런스가 그렇게 떠나버리고

겨우겨우 기어가며 동네 약국까지 갔다.

그런데 토할 것처럼 비틀거리는 날 보더니

약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거기 거기, 당장 나가!

백인 할머니였는데,

진짜 괴물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빽빽 소리를 치는거다.


약국 앞 벤치까지 겨우 기어가

주저앉아 있는데

너무 서러워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기가 막혔다.


한국의 의사, 약사들은 참 친절했는데.

아픈 사람에게 목소리를 낮춰주고,

괜찮아질 거라 달래주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런 따뜻함이 너무 그리웠다.


찬바람을 쐬며 밖에 있으니

정신이 조금 돌아왔다.

결국 우버를 불러 제일 큰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다행히 111 통화 기록과

간호사가 써준 메모 덕분에

수속은 예상보다 빠르게 끝났고,

병원 구석 의자에 앉아

진정제와 수액을 번갈아 맞았다.


조금씩 속이 가라앉았다.

병원을 나서니 이미 밖은 깜깜했다.

아침부터 진정제 하나만 맞았더라면,

오후 수업도 듣고

평온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이곳에서 병원을 가는 건,

정말 하늘의 별 따기다.

무료 의료라는 슬로건 뒤엔

그 혜택에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현실이 있더라.

앰뷸런스도, 응급실도,

수액도, 약도 무료였지만

정작 필요한 사람은 그 혜택을 쉽게 누릴 수 없었다.


아프지 말자.

혼자 아프면, 정말 너무 서럽다.

병원 가기조차 힘든 이 나라에선,

건강이 가장 확실한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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