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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 닿지 않은 곳에

누군가의 이야기

by Popfeelter Mar 27. 2025

  집이 엉망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날을 정해 대청소를 하는 것이 그만의 루틴이었건만 지키지 않게 된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사람을 만나는 게 귀찮다고 여겨진 순간부터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일이 끝나면 사람들을 만나는 대신 곧장 집으로 돌아와 배달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먹고 남은 음식과 쓰레기는 그대로 싱크대에 처박혀 며칠을 그곳에 머물렀다. 벗어둔 옷가지들은 제멋대로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고 세탁기에서 막 나온 빨래들과 뒤섞여 서로 구분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즐겁게 떠드는 것이 보기 싫어 단체 채팅방에서 나올까 고민하기를 며칠, 괜히 누군가 이상함을 느끼고 그에게 안부를 물어올까 봐 겁이 나 그만두기로 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물어오면 대답할 거리도 없었다. 그저 사람들의 대화 속에 잠깐 끼어들어 시덥잖은 농담 몇 마디 던지고 사라지는 것이 훨씬 나았다.


  약의 용량이 갈수록 늘어났다. 종이에 적힌 수십 개의 질문에 답을 하고 마주 앉아 대화를 끝내고 나면 늘 좌절감이 따라왔다. 이곳에 또 와야 하는구나. 몇 달을 꼬박 찾아가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마음이 답답하기만 했다. 침대에 누운 채로 약봉지를 집어 들고 구깃거렸다. 이걸 한 번 더 먹는다고 나의 내일이 크게 달라질까? 그는 봉지를 뜯어 안에서 뒤섞이고 있는 알약들을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을 때마다 온갖 생각들이 그를 괴롭혔다. 그를 아프게 했던 일들이 반복되어 떠올라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는 몸을 벌떡 일으키고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제발 그만 생각해. 삼켜낸 약이 빨리 이 생각들을 없애줬으면 싶었다. 빌어먹을 수면유도제가 빨리 자신을 기절시켰으면 했다. 그렇게 그는 삼십 분을 넘게 앓다 일순간 약에 취해 까무룩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땐 이미 해는 중천에 떠 있었고 약의 힘을 빌려 잠을 청한 탓인지 꽤나 잤음에도 그리 개운치 않았다. 머릿속이 괴로운 기억들로 가득 차는 것은 늘 똑같지만 차라리 일이라도 할 때가 나았다. 오늘 같은 휴일엔 정말이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괴로운 생각을 하는 것과 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괴로워하는 것, 단 둘 뿐이었다. 며칠 내리 뭘 먹을 때마다 체하는 통에 입맛이 돌지 않았지만 뭐라도 먹어야 했다. 배달 어플을 켜 한참을 들여다보며 잠시 시름을 잊은 그는 메뉴를 고르지 못한 채 그대로 화면을 끄고 도로 눈을 감았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며칠 전 인터넷은 온통 유명인의 죽음으로 떠들썩했다. 온 세상이 그 사람을 가엾게 여겼지만 그는 한없이 부럽기만 했다. 어떻게 했을까. 그 찰나의 괴로움을 대체 어떻게 참아냈을까.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던데. 영상 플랫폼에 그 방법을 검색해 봤지만 나오는 거라곤 위로의 메시지 몇 줄 뿐이었다. 막기만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난 진짜로 도망가는 방법을 찾고 싶은 건데. 몇 번의 시도 끝에 얻는 건 늘 아픔과 몸 이곳저곳에 남는 생채기뿐이었다.


  그의 지금을 알고 있는 친구는 그가 찾을 때마다 달려왔다. 오늘도 친구를 불러낼까 잠시 생각했지만 이미 너무 긴 시간을 함께 해 준 사람이었기에 더 이상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 괴로움을 잊게 해 줄 사람은 그 친구뿐이라 몇 번을 고민하다 이내 마음을 접고 돌아누웠다. 그냥 이렇게 누워있다 보면 내일이 오겠지. 내일은 출근이라도 하니까 조금은 살 만할 거야. 하지만 한 켠으로는 또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하루하루가 재미있지도 행복하지도 않은데 내일이 오면 뭐하나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밖에는 없는 이 일상은 지루하고 또 괴롭기만 했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 삶은 생각보다 그를 더 힘들게 했다. 유쾌하게 살아낼 용기도 대차게 떠나버릴 용기도 없었던 그에게 하루하루는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가끔은 궁금했다. 남들도 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 다들 이렇게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며 이 정도의 고통은 다 감내하고 사는 건지. 혹시나 자신이 유난을 떨고 있는 건 아닌지. 모두가 이다지도 힘들 때면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더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며 살고 있었다. 내가 떠난 후의 세상을 상상하며 살던 자신과는 분명히 달랐다. 사람들 사이에 계속 섞여있을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꽃밭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 틈에 시들어가는 자신이 그저 쓸모없게만 느껴졌다.


  내일은 또 일터로 나가야 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고 떠들다 집에 돌아오면 오늘처럼 괴로운 시간을 반복할 테다. 나에게 정말 내일이 필요한가? 누군가 내게 답을 알려주면 좋으련만 세상은 자꾸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채근한다.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이 생각들을 지우고 싶을 뿐인데. 이 생각들을 지우기 위해선 정말 한 가지밖에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자꾸 힘을 내라고만 한다. 나쁜 생각은 하지 말라고. 그는 몸을 일으켜 물을 삼키며 생각했다.


  내일은 꼭 유서를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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