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유토피아
1연
그들이 신을 만난 곳은
냉동코너 끝에 쌓인
특가 스티커 아래였다
"3개 구매시 1개 증정"
빨간 글씨로 쓰인 계시를
주머니에 넣은 채
카트를 밀던 사람들은
모두 천국의 문턱에서
바코드를 긁었다
2연
과일코너의 포도알들은
십자가보다 작은 체리톰으로
피어났다가
플라스틱 용기에 갇혀
신의 육체가 되었다
한 노인이 손을 뻗자
유통기한 지난 할인 스티커가
그의 이마에
성수 대신 붙었다
3연
냉장고 문 열리는 소리가
성당 종소리처럼 울리던 날
아이스크림 진열대 앞에서
천사들은 알바 유니폼을 입고
"이번 주 주간 특가"를
외쳤다
그들의 날개는
폴리에스테르 제품이고
후광은 LED 할인 표지판이었다
4연
한 여자가 계산대에서
포인트 카드를 건네며
"구원이 여기 있나요?" 묻자
카운터 너머로
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수증 뒷면의
쿠폰을 모아
모아진 숫자가 완전해지면
그때 천국으로 가는
엘리베이터가 열리느니라"
5연
문 닫는 시간이 되자
슈퍼마켓 조명이 꺼졌다
빈 장바구니들만이
컨베이어 벨트 위에 남아
자정의 기도를 올렸다
"오늘도 우리는
배고픔 대신
유통기한을
주셨사오니
이 포장된 영혼들을
거두소서"
/나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