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악플을 사랑하는 어리석은 영혼
오늘 나는 또 악플을 정독했다.
사람 속을 모험하는 것은 즐겁다.
사람은 작은 행성과 같다. 행성인 지구를 봐보자. 멀리서 보았을 때는 상당히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그 형상을 설명할 수 있다. 파란 바다 5 양과 초록 대륙 6주가 결합된 구체의 행성. 그러나 그 안에 들어가 보면 어떤가? 한국의 풍경이 지구일까? 아니면 사하라 사막의 사막들이 지구일까, 아니면 남극의 얼음일까? 그것도 아니면, 맨틀이나 내핵이라는 마그마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니 그것이 본질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양이 절대적이라고 해서, 1%의 지각 위에서 펼쳐지는 경이로운 생명들의 이야기를 무시하기도 힘든 노릇이다.
사람도 지구와 같다.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사람이구나’ 하고 윤곽을 잡기란 정말 쉽다. 한 사람으로 예시를 들어 보자. 이름 박광득. 70대 깐깐한 해병대 출신 노인. 간결하고, 명확하다. 그렇다고 틀렸냐고 하면, 오히려 아주 정확하다. 그러나 박광득 씨라는 행성에 착륙해 그 사소한 내면부터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모험의 시작이다. 이 사람도 어린 시절이 있었겠지. 어떤 부모를 만나서 어떻게 자랐을까? 그 어린 시절로부터 형성된 어떤 가치관이 그를 해병대로 인도했는가? 귀신 잡는 해병대라지만, 사실 숨겨놓은 두려움은 없을까? 어떤 시련이 있고, 어떤 상처가 있고, 그러나 어떻게 이겨냈고, 지금 이렇게 늙어서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이런 것들은 바로는 알 수 없다. 또 확신할 수 없다. 평생을 함께한 나를 보면, ‘나는 이렇다’ 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정반대인 수도 있고, 또는 그 두 개가 공존할 수도 있고, 또는 두 개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을 수도 있다. 나보다 훨씬 덜 본 타인은 오죽할까? 결론은 행성의 안쪽이란 자세히 오래 봐야만 비로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리고 그 광경은, 단지 파랗고 초록색의 구체가 아닌 그야말로 다양한 색채의 퍼레이드다. 인간이란 그런 존재다.
나는 이 행성을 모험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나는 원래가 구조적인 것을 관찰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다. 그래서 어릴 적 학교를 마치면, 돌담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개미나 콩벌레 따위를 관찰하고 관찰일지를 적곤 했다. 사춘기 때가 되며 그 관심은 자연히 나를 비롯한 또래 사람에게로 옮겨갔다. 나는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나는 마치 만화의 초능력자처럼 ‘팟’하고 대화 몇 번에 본질을 꿰뚫는 그런 멋진 사람을 꿈꿨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런 통찰(직감)도 없고 두뇌 회전도 느렸다. 그래서 나는 개미와 공벌레를 보듯이 사람을 오래 보기 시작했다. 또 나는 아무래도 무언가의 전체 윤곽을 보는 능력이 부족했다. 나는 숲에서 나무, 나무에서 이파리, 거기서 잎맥을 보는 사람이다. 이런 고찰은 상당히 세밀하다고 칭찬할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코끼리 만지는 장님처럼 하나만 집중하다 보니 다른 부분을 틀릴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내 생각을 확신하지 않았다. 아무리 확실해 보이는 부분도 가설로 남겨두고 수정할 여백을 준다. 그리고 틀린 부분을 발견하면 계속계속 고쳐 나갔다. 그러다 보니 난 어느새 깊고 길게 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관찰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새 타인을 꽤 깊이 알게 되어 그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데, 그러면 같은 한국이라도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보인다. 그러면 나는 지구의 한국에 쭉 살았지만, 실제로는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한국이라는 무한한 행성을 항해하고 있는 모험가인 것이다!
이 스파클이 절정의 도파민을 뿜는 순간은 역시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숫자의 행성들이 충돌하는 순간이다. 사람과 사람이 대화할 때 뿜는 케미스트리, 즉 화학 작용은 그 사람의 새로운 면을 발견함과 동시에 두 행성들이 마치 크레용처럼 서로의 색채가 섞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화학 시간에 배운 이온들의 전자 반응처럼 우리가 몰랐던 전혀 새로운 색채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이온에 비유했듯이 그것은 타고 올라가 분석하면 랜덤 한 결과가 아닌 철저한 과학 공식에 따른 순리인 것이다. 이럴 때면 흥분을 감출 수 없을 정도로 멋지고 경이로워서, 집에 와서도 그 순간을 계속 곱씹곤 한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대화 중 즐거웠던 순간을 계속 곱씹는 걸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내가 불과 여덟 줄 전에 했던 얘기를 번복해야겠다. 이 행성의 항해에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의 끝은 대화 따위가 아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절정의 도파민은 그보다 한 단계 위, 하늘 위에 금단의 구역이 있다. 그래, 바로 마약이다. 행성 간 전쟁, 인간들의 싸움. 그것이 내겐 마약이다. 인간들이 서로 부정적으로 충돌할 때 내뿜는 격하고 톡식 한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인간의 본질을 가장 많이 껴안고 있다. 그 때면 사람은 예의와 도덕으로 치장한 사람의 가죽은 벗어던진다. 그리고 살아가며 타인에게 받은 트라우마 또는 더 깊이 들어가 어린 시절에 형성된 욕망 또는 결핍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추구하는 사람의 내면과 가장 닿아있다. 이렇게 말하면 인간 내면엔 부정만 존재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데, 결코 그런 건 아니다. 공격과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본질은 전체가 아니다. 부정뿐인데 그 순도가 높다는 말만 하려는 것이다. 아무튼 싸움의 관망은 즐겁다. 그걸 깨달았을 때부터 나는 세상의 논란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우선은 같이 싸운다던가 악플을 단다던가 하지 않고 ‘읽기’만 했다는 것을 확실히 하고 가겠다. 잘했다는 건 아니다. 아니, 변명이 맞나? 어쨌든 인터넷에서 하는 vs놀이 따위부터 시작해서 연예인들의 몰락(이 경우엔 연예인 쪽에서 사과하지 않고 독불장군으로 싸우는 경우만 본 것 같다. 그래야 ‘행성 간의 전쟁‘이 성립되니까). 남녀갈등. 정치갈등...
이 즐거움은 나를 갉아먹었다. 마치 코카인 잎을 씹는 것과 같았다. 큰 사건이 터지면 하루종일 관련 글을 정독하고, 악플을 정주행 했다. 도파민에 찌들어가는 내가 보였다. 그리고 이건 잘못이다. 남의 슬픔을 기쁨으로 삼았다는 거니까. 인간의 존재가 내게 흥미밖에 안 되었다는 거니까. 악플을 더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이 잘못은 내 업보가 되어 나를 무겁게 할 것이다. 사람을 볼 때 부정적인 면부터 보고 날 고찰할 때 그 악플들처럼 날 재단하고 악마화할 것이다.
그래서 나의 부끄러운 점을 이렇게 밝히고 줄여 가려고 한다. 예전에는 나도 이런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한동안 꾹 참다가 어느 하루 터져서 하루종일 정독하곤 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려면 나라는 행성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내가 싸움을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이런 글은 하루에 시간을 정해서 10분씩만 읽기로 결정했다. 하루에 10분씩 나쁜 짓을!이라고 하기에는 갈등에 대한 글을 읽는 게 나쁜 건 아니다. 인간들 읽으라고 써진 기사가 많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요즘 세상과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또 여태껏 나를 특이한 사람처럼 설명하고 내 어떤 고유한 면이 가십거리를 보는데 일조했다는 것만 설명했지만, 사실 싸우는 거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이다. 나도 앞서 설명한 것 말고도 누군가의 몰락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에서 비롯되거나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걸 인지하고 줄여나가면 된다. 내가 가진 관찰을 즐거워하는 특성을 잘 닦아나가자. 단점은 빼고 장점은 강화하고 계속 두드리면 좋은 보석이 되어 있겠지. 그때까지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