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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면 아메리카노라 했겠지

It’s not my cup of tea

by Susie 방글이




가끔 회사 이벤트에 참석하면 어색한 대화를 피할 수 없다.꼭 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억지로라도 말을 이어야 하니까, 날씨 얘기에서 시작해 드라마, 가수 얘기까지 줄줄 나온다.


그날은 요즘 잘 나가는 K-pop 얘기로 흘러갔다. 누군가는최애 아이돌을 자랑했고, 다른 사람은 신곡이 중독성 있다고 맞장구쳤다. 그때 옆에 있던 미국 IT 아저씨가 씩 웃으며 끼어들었다. 그는 솔직하게 다 똑같이 들린다고 했다. 그는 엑셀 단축키는 줄줄 외우지만, K-pop에는 영 낯선 사람이다.


"It’s not my cup of tea."


한국 사람이라면 번역기가 또 신나게 돌아갈 수 있다.


'It’s not my cup of tea'는 한국말로 어떻게 해석될까?


"저건 내 차 한 잔은 아니야."??

응? 갑자기 차 얘기? 홍차? 녹차?

영어권에서 이 말은 단순하다.
"내 취향이 아니야"라는 뜻.


특히 음식, 영화, 음악 취향을 말할 때 많이 쓰인다. "싫다"까지는 아니고, 그냥 "나랑은 안 맞아" 정도의 부드러운 표현이다.


그래서 한국식으로 풀자면 "내 스타일은 아니야"가 제일 가깝다. 조금 귀엽게 말하면 "내 취향저격은 아니네" 정도.


여기엔 문화적 배경도 숨어 있다.
영국은 커피보다 차를 더 많이 마시는 나라이다 보니, '차'는 곧 '개인 취향의 은유'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사실 이 표현은 17세기 후반~18세기 초, 포르투갈 왕녀가 영국 왕실로 시집오며 차 문화가 상류층에 퍼지던 시기와 맞물려 생겨났다.


좋아하는 차 한 잔을 음미하듯, 'cup of tea'는 곧 '내가 좋아하는 것', '내 취향'을 뜻하는 표현이 된 것이다. 그래서 "It’s not my cup of tea"라고 하면, "내 취향은 아니야"라는 부드러운 거절 표현이 된 셈이다.


또, 좋아하는 차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진한 얼그레이를, 또 어떤 이는 달달한 밀크티를 고른다. 취향은 찻잎처럼, 우려낼 때마다 각자의 색과 향을 드러낸다. 그래서 누군가의 "It’s not my cup of tea"는 거절이 아니라, "난 다른 향을 즐기고 있어"라는 고백에 가깝다.


여기서 재미있는 건, 영국이 차(cup of tea)로 취향을 말한다면, 미국은 잼(jam)으로 취향을 말한다는 점이다.


"Not my jam."


여기서 말하는 jam은 빵에 바르는 잼이 아니다. 원래는 재즈 음악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jam session에서 나온말로, "신나게 즐기는 것, 좋아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확장됐다.


그래서 누가 신나는 음악을 틀었을 때 "That’s my jam!"이라고 하면 "이거 내 노래야!"라는 뜻이고, 반대로 "Not my jam"은 "내 취향 아니야"라는 의미가 된다.


그러니까 영국 사람은 차를, 미국 사람은 재즈에서 나온 jam을 들어 취향을 표현하는 셈이다.

영국은 티타임, 미국은 재즈. 언어에도 각 나라의 취향이 묻어난다


한국은 차보다 커피가 생활의 중심이다.

만약 이 표현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이렇게 변했을지도 모른다.


"It’s not my cup of Americano."
(내 아메리카노 한 잔은 아니야.)


생각만 해도 괜히 웃음이 난다.




번역 Tip


* It’s not my cup of tea - "내 취향은 아니야", "내 스타일은 아니네."

* Not my jam - "내 취향 아니야". "내 거 아니네."


직역은 금물! 진짜 차나 잼 얘기로 오해받는다.

취향은 각자의 색깔이니까요!

라테아트 도전- 마늘이 아닌데 마늘로 보이는 건 저만 그러나요? ㅎ 아직 갈길이 멀었네요.


그러니 누군가 'It’s not my cup of tea’'혹은 'Not my jam'이라고 해도 상처받을 필요 없다.

어쩌면 그 사람은 다른 차를 마시며 자기만의 재즈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있을 테니까.

차든 음악이든, 결국 인생은 내가 채우는 셀프 리필이 아닌가.


그리고 한국은 지금 추석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친척들과 한자리에 모여, 송편만큼이나 다양한 질문과 대화가 오간다.


"결혼은 언제?", "취직은?", "애는 안 낳니?", "전공은 정했니?", "공부 잘해?".......


추석에 먹는 송편은 반갑지만, 저 말들은 잘 씹히지 않는 딱딱한 콩처럼 마음에 남기도 한다.

그럴 땐 속으로 살짝 미소 지으며 중얼거려 보자.


"It’s not my cup of tea."
"Not my jam."


굳이 큰 소리로 반박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의 관심도, 걱정도, 결국은 다른 빛깔의 사랑일 테니까.

추석이라는 큰 상 위에서, 각자의 취향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인정할 때

조금 더 따뜻하게 웃을 수 있지 않을까.




관련 표현이나 더 알고 싶은 표현이 있으면 언제든 댓글로질문해 주세요.


다음 회에서 또 만나요! See you in the next epis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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