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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산다

살기 위해 사고, 사며 살아간다

by Susie 방글이





딸과 나누는 대화는 때로 잔잔한 호수 같다가도, 갑작스레 파도가 치는 바다로 변한다. 가끔 한국어의 미묘한 뉘앙스에 발이 걸려 넘어질 때가 있다. 영어로 말할 때는 칼로 자르듯 선명히 갈라지는 말들이, 한국어에서는 한 글자 차이로 전혀 다른 세상을 열어젖힌다.


딸이 집에 머물던 날,
함께 드라이브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나는 무심코 그 말을 흘렸다.


"예전처럼 옷 사고, 이것저것 사는 재미가 없더라. 요즘은 사는 게 의미 없어."


그 순간, 딸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치 내가 인생의 깊은 허무를 고백한 철학자라도 된 듯한 표정이었다.

"어… 뭐라고?"


내가 말해놓고 나도 덩달아 놀랐다. 내 말은 그저 '물건을 사는 거'가 시들하다는 뜻이었는데, 딸은 '사는 것'. 즉 삶 자체가 의미 없다고 들은 것이다. 한 글자, 한 억양의 차이가 우리의 대화를 전혀 다른 우주로 날려버린 셈이다.


한국어의 ‘사는 거’는 참 묘하다.


'사는 거'는 카드 긁는 소리,

새 옷을 처음 입을 때의 작은 들뜸이다.
장바구니가 꽉 찰수록 기분도 채워지는 듯하지만,
며칠 지나면 금세 비워진다.
반짝이는 건 늘 잠깐이다.


반대로 '사는 것'은 느리고 묵직하다.
눈을 뜨고, 밥을 짓고, 사람을 만나며
하루를 이어 붙이는 일.
지루할 때도 있지만, 어느 순간
"오늘도 잘 버텼다"는 안도감을 남긴다.

결국 우리는 둘 다 하며 산다.


물건을 사는 거, 그리고 삶을 사는 것.
'사는 거'가 오늘을 반짝이게 한다면,
'사는 것'은 내일을 버티게 한다.


영어라면 이 둘은 명확하다.


To buy something: 물건을 사는 행위, 소유의 즐거움.

To live: 살아가는 일, 존재의 깊이.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두 뜻이 한 음절에 얽혀 춤춘다. ‘사는’이라는 말은 맥락이라는 무대 위에서 전혀 다른 옷을 입는다.


그날 딸은 내가 삶의 의미를 잃었다고 오해했고, 나는 그 놀란 눈빛에 웃음이 터졌다.

"아니, 쇼핑이 재미없단 뜻이야!"
"하, 진짜 깜짝 놀랐잖아. 엄마가 갑자기 니체 된 줄 알았어!"

무엇을 살까 고민하지만, 결국은 어떻게 살까에 머문다.


그럼, 반대로 영어 속 숨은 이야기를 살펴본다.


비슷한 일은 영어에도 많다. 같은 단어가 맥락에 따라 전혀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bad (나쁘다 / 멋지다)
A: That boy is bad. (저 아이는 나빠.)
B: Yeah, he lies all the time. (응, 맨날 거짓말하잖아.)

vs.

A: His dance move is bad! (그 춤 동작 끝내준다!)
B: Yeah, I know. He’s great. (맞아, 정말 멋지지.)


miss (그립다 / 놓치다)
A: I miss you. (너 보고 싶어/그리워.)
B: I miss you too. (나도 너 보고 싶어.)

vs.

A: I missed the bus. (나 버스를 놓쳤어.)
B: Oh no, you’re late again. (아이고, 또 늦었네.)


mean (뜻하다 / 못됐다)
A: What do you mean? (무슨 뜻이야?)
B: I mean the meeting is tomorrow. (내 말은 회의가 내일이라는 거야.)

vs.

A: He’s mean. (그는 못됐어.)
B: Yeah, he never shares anything. (맞아, 절대 아무것도 안 나눠주지.)


딸은 내 말을 "Life has no meaning."(삶의 의미가 없다)로 들었지만,
내가 말한 건 "Buying doesn’t feel meaningful anymore."(물건을 사는 게 더 이상 의미 있지 않다)였다.


결국 한국어든 영어든, 같은 단어라도 맥락을 읽지 못하면 오해가 생긴다.
언어는 같은 얼굴을 하고도,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진실을내놓는다.
그래서 말은 늘 조심스럽고, 또 그래서 더 재미있다.


요즘 나는 '사는 거'에서 한 발 물러나 '사는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물건 대신 추억을 사고, 시간을 사고, 마음을 산다.


결국 삶은, 무엇을 '사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사는가'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족의 대화와 산책, 작은 웃음을 모으며
조용히 '사는 것'을 배워간다.

안개 낀 가을 아침, 삶은 다시 시작된다.

살수록 알게 된다. 진짜 '사는 건' 물건이 아니라 순간이라는 걸.



관련 표현이나 더 알고 싶은 표현이 있으면 언제든 댓글로질문해 주세요.

다음 회에서 또 만나요! See you in the next epis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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