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영어, 뜻은 한국어
"오늘은 내가 낼게. 나 월급날이야!"
순간 테이블 위가 조용해졌다.
누구 하나 말은 안 하지만, 모두의 눈빛이 교차한다.
"그래, 이번엔 네가 내는 걸로 하자"는 안도감과
"아, 내가 내야 하는 차례였나?" 하는 미묘한 불안이 동시에 돈다.
한국 친구들과 밥을 먹고 나면,
계산서는 언제나 또 다른 드라마의 시작이다.
지갑이 열리기 전까지, 우정과 눈치와 자존심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단골 대사.
"더치페이 하자!"
한국 식당에서 흔히 튀어나오는 이 말, 듣기엔 영어 같지만 사실은 가짜 영어다.
영어권에서 이 말했다간 외계인 취급받기 딱 좋다.
"네덜란드 스타일로 가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하필 네덜란드일까?
옛날 유럽에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돈 관리에 엄격했다고 한다.
그래서 각자 자기 몫을 내는 공평한 계산법을 "Dutch style"이라 불렀다.
설에 따르면 17세기 영국과 네덜란드의 상업 경쟁 속에서
영국인들이 살짝 비꼬는 뉘앙스로 붙인 이름이라고.
그러니까 '더치페이'는 한국식 K-영어 대표주자다.
마치 '핸드폰'이 영어인 척하는 것처럼.
여기서 "Let’s go Dutch"의 반대말은 "It’s on me!"다.
뜻은 "그건 내 위에 있어"… 계산서가 머리 위에 떠 있는 건가?
실제로는 "내가 낼게!”"또는 더 쿨하게 "내가 쏠게."라는 의미다.
한국의 "내가 낼게" 상황은 아래와 같다.
A: "오늘은 내가 낸다!"
B: "아니야, 지난번에 네가 냈잖아."
C: "둘 다 비켜, 이번엔 내가 긁는다!"
계산대는 순식간에 K-드라마 클라이맥스.
손목 잡기 액션, 지갑 빼앗기, "이건 내 마음이야!"라는 명대사까지.
이때 돈은 이미 화폐가 아니라 마음의 언어다.
미국의 "It’s on me”"상황은 단출하다.
A: "It’s on me." ("내가 낼께")
B: "Thanks! Next time I’ll get it." (그래, 고마워. 다음엔 내가 살게")
끝. 드라마는 없다.
굳이 우기면 "내 돈 무시해?"라는 오해만 산다.
여기선 독립성과 실용성이 룰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한국 식당에서 "이건 서비스예요~"라는 말,
외국인 손님 앞에서는 종종 혼란을 부른다.
"서비스요?"
미국 사람은 잠깐 멈칫한다.
'서비스(service)'는 영어인데… 왜 무료지?
그들의 머릿속엔 good service = '친절한 응대'뿐이다.
한국식 "서비스"는 사실 '공짜'라는 뜻의 K-영어다.
식당 주인이 "이건 서비스요~"라고 내올 때,
그건 영어로 "It’s on the house!"라고 번역해야 맞다.
즉, "가게가 쏜다"는 의미다.
"It’s on me(내가 낼게)" 대신, "It’s on the house(가게가 낸다)"인 셈이다.
정리하자면, 글로벌 계산 문화는 이렇게 나뉜다.
*한국의 "더치페이" - 공평보다 눈치와 정 테스트
*영어권의 "Go Dutch" - 진짜 1/n, 감정 개입 제로
*한국의 "내가 낼게" - 우정·사랑 확인 의식
*영어권의 "It’s on me" - 쿨한 제스처, 다음에 갚으면 끝
*한국의 "서비스예요~"- 가게의 정 표현
*영어권의 "It’s on the house" - 가게의 제스처
한국은 드라마, 미국은 미니멀리즘.
표현은 달라도 결국 같은 마음.
밥 먹고 웃는 게 제일 맛있다.
단, 계산서 오기 전에 누가 낼지는 정해두자.
안 그러면 또 액션신 찍는다.
더치페이 - Let’s go Dutch. / Let’s split the bill.
내가 낼게 - It’s on me! / I got this!
서비스예요 - It’s on the house!
두 나라가 한 테이블에 모이면?
아마 계산서만 놓고 시트콤 한 시즌 찍을 수 있다.
계산은 숫자로 끝났지만,
정산은 웃음과 대화로 이어진다.
관련 표현이나 더 알고 싶은 표현이 있으면 언제든 댓글로질문해 주세요.
다음 회에서 또 만나요! See you in the next episo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