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시장과 나의 망설임
“대출 잘 나와. 지금 아니면 진짜 타이밍 놓친다.”
친구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잔의 닿는 소리는 가볍지만, 그의 말은 이상하리만큼 무거웠다.
마치 선택을 강요하는 듯한 압박감이 말 속에 스며 있었고,
그 순간 나는 그 말을 흘려듣지 못했다.
커피잔에 담긴 온기보다,
그 말이 전하는 분위기가 더 따뜻했으면 좋았을까.
하지만 그날, 우리는 온통 ‘집 이야기’에 묶여 있었다.
잔잔한 대화 같았지만, 그 밑바닥에는 ‘결정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무언의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그 긴장은 나를 조용히 조여 왔고, 나만 멈춰 있는 듯한 이질감이 짙어졌다.
뉴스는 하루가 멀다 하고
‘거래량 반등’, ‘대출 규제 완화’라는 헤드라인을 쏟아냈다.
유튜브, 카페, 기사 제목 모두 “지금이 기회다”라고 외쳤다.
그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어느 순간 나의 생각을 잠식해갔다.
정부는 정책을 풀고,
은행은 대출 문턱을 낮췄다.
시장 전체가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마치 움직이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게임의 말처럼 느껴졌다.
그 안에서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이상했다. 모두가 움직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왜 멈춰 있었을까.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옳은 걸까, 아니면 나만의 속도를 지켜야 할까.
그 이유를 알아야 했다.
멈춤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어떤 마음의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나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 외곽, 준신축 아파트.
면적, 학군, 생활권 모두 안정적.
몇 달 동안 발품 팔아 찾은 결과물이었다.
발바닥이 아릴 정도로 다닌 끝에, 비로소 찾은 ‘적당한 집’.
소득 대비 대출 상환 비율 안정.
DSR 40% 이하, LTV 여유 있음.
은행 상담 완료, 승인 완료.
수치상으로는 흠잡을 곳 없는 결정이었다.
이제 계약서만 쓰면 됐다.
종이에 이름 세 글자 쓰면 끝.
그런데 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계약서 위에서 멈춘 손끝은, 마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듯 떨렸다.
계산은 끝났고,
모두가 사라고 했고,
은행도, 친구도, 가족도
“지금 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안 사면 끝이다’는 말이
오히려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 말 속에는 선택이 아닌 강제가 숨어 있었다.
손은 멈췄고,
마음은 멀어졌다.
계약서 한 장 앞에서, 나는 너무도 멀리 서 있었다.
그 순간 들었던 생각.
“정말 지금이 맞는 걸까?”
주변의 모든 신호는 ‘지금’이라 외쳤지만,
나는 그 흐름 속에서 자신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계산은 끝났지만
마음은 답을 내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숫자로 확신을 만든다.
하지만 나는 숫자 위에 내 삶을 올릴 수 없었다.
숫자는 정확했지만,
나는 불안했고, 낯설었고, 어딘가 두려웠다.
나는 멈췄다.
그리고 그 멈춤이
내 방식이었다.
내 삶을 내 방식으로 살고자 한 첫 시도였다.
친구는 계약했다.
나와 같은 시기, 같은 지역, 같은 조건의 집이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에게 ‘지금’은 기회였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며칠 후, SNS에 올라온 사진.
아파트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
‘새로운 시작’이라는 문구.
그걸 보는 순간,
나는 혼자 남겨진 느낌을 받았다.
같이 출발한 경주에서 나만 제자리에 선 듯한 감각.
뉴스는 “서울 매수세 회복”,
“외곽 지역 반등세 본격화”라 말했고,
카페는 “지금 안 사면 1억 손해”라고
자극적인 문구를 쏟아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믿고 움직였고,
나만 움직이지 않았다.
불안했다.
뒤처졌다는 느낌은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흔들림이었다.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한 걸까?’라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내 안에는
또 다른 질문이 있었다.
“나는 정말 이 집을 원하는가?”
“그곳에서의 하루하루가 그려지는가?”
그 질문은 단순히 집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의 방향에 대한 물음이었다.
질문은 계속 이어졌고,
그 질문 속에서
나는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남들은 결단이라 했고,
나는 망설임이라 불렸지만,
그 속엔 나만의 리듬과 호흡이 있었다.
거래량 증가.
강남 6%, 송파 5.9%, 경기 외곽 3.1% 반등.
수치는 말이 없지만,
사람들은 그 숫자에 확신을 담았다.
숫자는 객관적이었고,
그래서 더 신뢰받았다.
유튜브에선 ‘지금 안 사면 기회 놓친다’는
분석 영상이 매일 쏟아졌고,
데이터는 마치 미래를 예언하듯
모두를 몰아붙였다.
그리고 나는 점점 숫자에 눌려갔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숫자는 내 삶을 대신 살지 않는다.
햇살의 방향,
창밖의 소리,
그 집의 온기.
계산서엔 없는 것들.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감각.
삶의 질은 숫자가 말해주지 않았다.
사는 건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삶은
숫자가 책임질 수 없다.
결정은 숫자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리는 것이다.
숫자는 말이 없고,
삶은 조용히 말을 건다.
나는 그 말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그 말은 내게 말했다.
“너의 삶을 살아라.”
나는 그 말을 따랐다.
두 달 후, 그 집은 다시 매물로 나왔다.
가격은 3천만 원 내려갔다.
거래는 뜸했고, 시장 분위기는 차분해졌다.
친구는 말했다.
“후회 없다. 나는 내 집을 샀으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선택을 존중했다.
하지만 나는, 후회할 선택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았기에
잃지 않은 것이 있었다.
불안 속에서도 지킨 내 속도, 내 리듬.
사람들은 결과만 본다.
그러나 나는 과정에서
내 삶의 속도를 지켜냈다.
기다림은 손해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자기 방어였고,
삶을 위한 시간이었다.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확인했고,
삶을 결정하는 기준이 남이 아니라 나임을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한 판단이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선언이었다.
시장은 다시 흔들린다.
뉴스는 또다시 ‘반등’을 말하고,
사람들은 또다시 ‘지금’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삶은 속도전이 아니다.
지금의 망설임은
미래의 후회를 막는 용기다.
그 용기가 내 삶을 지킨다.
나는 오늘도
내 속도로 간다.
느리지만, 분명한 속도.
불안보다 중요한 건
나를 이해한 후의 움직임이다.
그 움직임이, 나의 삶을 만든다.
그리고 나는
그 삶을 살아가고 있다.
흔들려도, 멈춰도, 내 속도로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