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
'고혹하다'라는 표현이 참으로 적절하다. 영화 '아가씨'를 통하여 필자는 우선 시각적인 매력에 미혹당한다. 모든 장면에서 거스를 것이 없었고, 그만큼 치밀했다. '박찬욱' 감독의 계산적이면서 의도적인 미장센이 담긴 영화다. 화면의 조도, 명암, 소품의 배치, 인테리어, 캐릭터의 복장 등 가시적인 요소들이 영화 '아가씨'의 핵심이다. 미장센을 통한 시각적인 재미도 영화 '아가씨'의 매력이다. 또한, 원작에 각색을 더해 영화 '아가씨' 고유의 이야기를 갖췄다. 원작이 가진 힘과 각색과 교차 편집 등의 연출로 독특한 스타일을 지니게 된다. 여기에 4명의 주연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가 때로는 개인적으로, 때로는 앙상블을 이루며 영화에 힘을 더한다. 또한, 캐릭터 간의 관계가 영화 '아가씨'를 더욱 다채롭게 빛낸다. 그 관계는 영화의 뼈대가 되며 그 위에 이야기를 얹고, 고혹스러운 미장센의 옷을 입힌 듯한 느낌인 영화 '아가씨'다. 시선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박찬욱' 감독의 가장 대중스러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고혹한 미장센, 매력적인 이야기와 그들의 관계, '박찬욱' 감독의 색채가 묻은 연출로 우리에게 다가온 영화 '아가씨'를 살펴본다.
캐릭터 간의 관계가 흥미롭다. 원작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원작과 각색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암투 속에서 발생하는 인물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과 얽히고설키게 되는 관계가 영화적으로 매력 있게 드러난다. 그 관계가 영화 '아가씨'의 뼈대가 된다. 보호라는 허울의 울타리 안에서 엄격한 규제로 인해 자아가 확립되지 못한 아가씨(배우 김민희), 본색을 숨긴 채 접근하지만 관계 속에서 미묘한 감정이 발생하게 되는 숙희(배우 김태리), 그리고 백작(배우 하정우)과 후견인(배우 조진웅) 4명의 인물 간의 관계 안에서 피어나는 갈등은 마치 생물의 번식을 연상케하는 생생함을 지닌다. 특히 두 여배우의 열연이 돋보인다. 당시 데뷔작이었던 '김태리' 배우는 저돌적이며 직선적인 암사자 같은 느낌이라면 '김민희' 배우는 고혹함을 지닌 여우와 같은 모습이다. 두 인물의 깊어지는 관계와 감정선을 따라가면 영화의 매력을 보다 크게 경험할 수 있다. 두 인물은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영화가 전개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백작(배우 하정우)을 통해 유머와 긴장감을 함께 더해주고, 후견인(배우 조진웅)을 통해 공포스러운 서스펜스를 발생시킨다. 각각의 역할을 균형 있게 나눴고 그 관계를 치밀하게 연결한다. 그 관계로 인해 영화는 유려하고 매끈하게 전개된다.
영화 '아가씨'는 거스를 장면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미장센이 존재한다. 영화 내 한 컷, 그 최소 단위에서도 시각적으로 버릴 것이 없다. 그렇게 치밀한 미장센이 담긴 화면을 통해 관객들이 느껴지는 감정은 아마 극중 '숙희'가 느끼는 것과 비슷할 것으로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숙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고혹스러운 모습은 관객들이 보는 시선과 동일하다. 그 감정 또한 동일할 것이다. 그리고 화면의 조도, 명암, 소품, 디자인, 인테리어, 인물의 의상 및 스타일까지 시각적으로 분출하는 매력이 상당하다. 배경을 원작과 다르게 일제 강점기로 각색한 것도 영화 내의 미장센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멋스럽고 고혹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요소들이 화면에 즐비하다. 필자는 영화 '아가씨'를 본 이후로 기억에 남는 것이 시각적인 이미지다. 필자에게 영화의 전체적인 이야기보다 비교적 크게 다가왔던 미장센의 효과는 필자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인상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영화는 시각과 청각으로 경험하는 종합예술이지만 그중 크게 작용하는 것은 단연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아가씨'는 치밀하고 감독의 의도가 적절히 부가된 미장센이 시각적으로 큰 만족도를 선사하는 영화다.
'세라 워터스'의 역사 소설 '핑거스미스'를 각색했다. 일제 강점기로 변화를 주고 영화적으로 구현한다. 이야기의 힘이 원작에 있음은 물론이지만 한국 정서에 맞춘 각색이 아닌 원작에 기본을 두고 작은 변화만을 준다. 아마 원작의 힘을 믿고 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원작의 힘이 있으니 영화 '아가씨'는 탄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에는 중심이 될만한 여러 가지 소재가 있다. '숙희'와 '아가씨'가 느끼는 미묘한 감정, '백작'과 '후견인'을 통한 서스펜스,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발생하는 갈등 등 굵직한 소재들이 영화 '아가씨' 내에 있지만, 영화 '아가씨'는 한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재들을 적절하게 섞어 하나로 묶는다. 그로 인해 영화 '아가씨'만의 고유하며 매력적인 이야기가 탄생한다. 매력적인 이야기에 고혹스러운 영화적 미장센이 더해지니 영화의 매력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 영화적인 이야기의 매력은 전혀 감소되지 않고 관객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매혹적이며 매력적인 이야기, 그 안에서 펼쳐지는 갈등,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조화롭게 비빈 영화, 바로 '아가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