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다니는 연구원의 스타트업 소설
이 이야기는 흔히 말하는 성공담도, 실패담도 아니다.
스타트업을 다뤘지만 창업 미화는 없고, 평범한 연구원을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연구 성취를 전면에 내세우지도 않는다. 대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스타트업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박사 학위를 받고, 대기업 계열사에서 안정적인 연구직을 수행한다.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이미 충분히 성공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안정 속에서 느끼는 미세한 균열, 그리고 더 큰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욕망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야기 속 또 다른 축에는 모두가 동경하는 스타 연구자가 등장한다. 유명 대학의 교수이자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 강연장에서 박수를 받는 상징적인 존재다. 이 스타 연구자는 자신만만하게 사업을 시작하지만 이제 시작하는 스타트업 대표일 뿐이다. 그는 과학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사업의 언어에는 서툴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천재 연구자와 현실의 사업 사이의 간극을 미화 없이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간극에 뛰어든 사람들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차분히 따라간다.
이 작품에서는 그 어떤 인물도 쉽게 평가하지 않는다. 주인공과 대표뿐만 아니라 순진한 연구자와 계산적인 주변 인물도 특정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 모두 각자의 논리와 사정, 그리고 시대적 조건 속에서 움직인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에서는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는 스스로 역할극을 하게 만든다.
스타트업에 몸담았거나, 몸담고자 했던 연구자와 직장인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주고 싶다. 안정을 버리고 가능성을 선택하는 순간의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그 선택이 반드시 성공 서사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다.
동시에 이 이야기는 대표와 창업가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싶다. 비전과 말, 그리고 실제 실행 사이의 간극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리고 그 간극의 비용을 누가 치르고 있는가를 묻는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 개인적인 이야기에도 가깝다. 실제로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들어봤거나 상상해 봤을 만한 상황을 하나의 스토리로 묶어 봤을 뿐이다. 화려한 성공 사례 그리고 뼈 아픈 실패 사례 뒤편에서 소모되었던 사람들 그리고 사건의 중심에서 격하게 오갔던 날 선 이야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질문하려 했던 한 개인의 시도가 이 책의 중심에 놓여 있다.
이 소설을 덮을 때쯤 이런 생각이 들면 좋겠다.
이 이야기가 특별한 누군가의 경험이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