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채널에서 보던 스타 연구자 "홍세진 교수"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여섯 시에 눈을 떴다. 알람은 맞춰 두었지만 울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 밤인 것 같은 창밖엔 달이 떠 있고, 나는 출근 준비를 한다. 이 시간에 눈을 뜨는 삶이 언제부터 당연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침은 기계적이다. 칫솔을 입에 물고 정수기에서 물 한 컵을 따른다. 양치를 하며 문득 어제 퇴사한 동료가 생각났다. 요즘 들어 매일같이 익숙한 사람이 나가고 낯선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퇴사하기 좋은 시기, 입사 후 3개월, 3년, 그리고 30년.
3개월은 현실을 깨닫고 갑자기 조급해지는 시기다.
나도 박사 졸업 후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가 그랬다. 퀴퀴한 학교 연구실과는 다른 깔끔한 건물 그리고 자동으로 열리는 출입문. 반듯한 사무실 책상 그리고 옆 자리에는 학생이 아닌 직장인들. 모든 게 정돈되어 있었고, 그 정돈됨이 오히려 낯설었다. 이제 진짜 사회인이 됐구나는 안도감도 있지만 통장에 찍힌 첫 월급을 보고 나서야 진지하게 퇴사를 고민했다. 내가 이 숫자를 받으려고 그 긴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낸 건가.
3년은 한계를 느끼는 시기다. 이제 일이 보이기 시작하고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회사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절대 못 바꾸는지도 보인다.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애초에 개인의 역량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구분된다. 이 시점에서 사람은 둘로 나뉜다. 한계를 받아들이거나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하거나.
그런데 나는 오히려 만족하면서 다녔다. 3년 차가 되자 내가 할 일이 명확해졌고, 이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상하게도 이 시기에 대학원 시절이 자주 떠올랐다. 내 연구를 한다고 믿었지만, 실상은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와 연구 방향에 맞춰 움직이던 시간들. 많이 배웠지만, 그만큼 시야는 좁아져 있던 시기였다.
돌이켜보면, 내 생에서 자존감이 가장 낮았던 시기는 박사 과정을 하던 때였고
회사를 3년쯤 다녔을 때가 가장 높아진 시기였다.
30년은 아직 나에게 와닿지 않는, 꿈같은 이야기다. 애초에 30년이면 정년퇴임일 것이다.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받으며 익숙한 사람들 사이에서 웃으며 회사를 떠나는 장면. 교과서 같은 결말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30년은커녕 20년 차인 사람도 많지 않다. 가끔씩 메신저에 올라오는 근속 표창 사진들은 언제나 몇 장 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 회사에서는 그렇다.
나는 지금 6년 차다.
그리고 가장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그리고 가장 만족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다.
오늘은 회사로 출근하지 않는다. 학술대회가 있는 날이다. 오늘 내 역할은 차려진 회사 부스에서 기술적인 지원이다. 간단히 말해 방문객들에게 회사 기술을 설명하는 것이다. 내가 원해서 맡은 역할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차출이다.
사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건 쥐약이다. 전화보다는 메신저, 회의보다는 메일을 선호하는 편이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 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대화는 늘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오늘은 8시간 동안 모르는 사람들과 말을 섞어야 한다. 같은 설명을 여러 번 반복하고 비슷한 질문에 비슷한 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데에는 꽤 익숙한 사람이다.
집을 나서면서 자료가 담긴 가방을 챙기고 회사 명함을 한가득 챙겼다. 아직도 밖은 컴컴하다.
학회장에 도착한 나는 따뜻한 카페라테를 들고 비슷한 옷차림의 사람들 무리를 따라간다. 어디에서 학회가 열리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백팩을 메고 비즈니스 스타일의 옷을 입은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대개 학회장이 나온다. 이 동선은 언제나 잘 맞는다. 명찰을 받고 안으로 들어가면, 희황 찬란한 부스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조명이 밝고, 회사 로고는 자랑스럽게 크게 박혀있다. 벽에 걸린 슬라이드와 제품은 모두 자신감에 차 있다. 나는 우리 회사 부스를 찾아 간단히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가방을 내려놓고 자료를 정리한다.
오늘은 2일 차다. 어제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오늘은 더 많겠다고 한숨 쉬며 괜히 팜플렛을 한 번 더 훑어본다. 이미 여러 번 본 내용인데도 손은 자동으로 움직인다. 내용이 궁금해서가 아니라 괜히 눈을 마주치면 설명을 시작해야 한다. 설명할 준비는 되어 있지만, 시작하는 건 늘 망설여진다. 괜히 부스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결국 피할 수 없는 시선과 마주쳤다.
"이거 기존 기술 대비해서 뭐가 다른 건가요?"
짧고 익숙한 질문.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이제 일할 시간이다.
이런 응대를 3 시간가량 했을 때, 우리 부스 한쪽에서 웅성거림이 있었다. 이 웅성거림 가운데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원이 만들어져 있었고, 몇 명은 휴대폰을 들고 있었고, 행사 촬영 스태프들도 그 주변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그는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질문에는 농담을 섞어 답했고 사람들은 그 농담에 익숙하다는 듯 웃어넘겼다. 준비된 여유였다. 무대에 서는 사람의 태도였다. 우리 부스에도 그를 알아보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주식 투자 TV 채널에서만 보던 그 스타 연구자였다. 홍세진 교수. 치료용 단백질 구조 설계 분야의 권위자. 기술이나 직책보다 이름이 먼저 회자되는 몇 안 되는 사람. 바이오의약품을 한다는 회사라면 한 번쯤은 초청 강연을 했다는 농담이 있을 만큼 업계에서는 거의 상징처럼 불리는 인물이다. 카메라가 가까이 와도 태연했고, 질문이 날아와도 서두르지 않았다. 큰 키에 깔끔한 정장과 과하지 않은 제스처. 말할 때는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주변의 공기까지 계산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여유로운 태도에 누군가는 멋있다고 작은 감탄을 흘렸다. 그 말이 들릴 정도로 주변은 그의 말 빼고는 조용해졌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같은 학회장에서 같은 배지를 달고 있었지만 이 사람과 나 사이에는 분명한 간격이 있었다. 발표 실적이나 인용지수 같은 숫자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주식 투자 채널에서 봤던 아우라가 현실에도 진짜 있었다.
홍세진 교수는 우리 회사 부스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그러다 내 앞에 서서 우리 회사의 단백질 생산기술에 대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는 질문에 진땀을 빼며 대답을 이어갔다. 역시 아무나 이런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홍세진 교수는 팜플렛을 한 장 넘기다 말고 나를 바라봤다.
"설명해 주신 분은 무슨 일을 하시나요?"
"단백질 의약품의 생산 공정 개발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개발한 단백질을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중간 역할이죠."
나는 반사적으로 명함을 꺼냈다. 오늘 하도 많은 명함을 꺼내다 보니 손의 감각만으로도 명함이 뽑혀 나왔다. 마치 서부영화에서 대결이 벌어질 때 총잡이가 총을 뽑아 드는 것 같았다.
"최정남입니다."
그는 명함을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을 한 번 입에 올려 굴려보듯 말했다.
"아, 최정남 박사."
"그래서 설명이 이렇게 정돈되어 있었군요. 어려운 일을 하시네요."
나는 그 말이 칭찬인지 관찰인지 구분하지 못한 채 웃었다.
"어려운 연구보다는 문제가 안 생기게 굴러가게 하는 쪽입니다."
"그게 제일 어렵죠."
홍세진 교수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그는 재킷 안쪽에서 고급스러운 가죽 명함지갑을 꺼냈고 명함 한 장을 천천히 집어 들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명함을 열 장쯤은 더 꺼낼 수 있을 것이다.
"홍세진입니다. 대학에서는 단백질 구조 설계를 하고 있고 요즘은 그 연구를 기반으로 회사 하나 만들고 있습니다."
"바이오벤처 창업을 하시나 봐요?"
"네, 8월쯤 시작할 예정이에요."
"연구는 충분히 됐습니다. 이제는 결과를 만들어 보려고요. 그래서 인재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죠. 사람 찾기가 쉽지 않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가 말한 충분히 된 연구와 결과가 논문인지 제품인지 아니면 숫자로 환산될 무언가인지는 묻지 않았다. 그는 부스 뒤편 장비를 한 번 훑어보고 다시 나를 봤다.
"오늘 키노트 끝나고도 여기 계시죠?"
"네, 만찬까지요."
"그럼 그때 다시 이야기하죠."
그는 그렇게 말하고, 이미 다음 부스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명함을 한 번 내려다봤다. 홍세진 교수는 오늘 키노트 강연을 하기로 되어있었나 보다. 키노트 강연은 보통 학술대회 시작 시간이나 하루 중 가장 이른 시간에 배치된다. 그런데 그의 강연은 이상하게도 오후 4시였다. 아마 강연이 끝난 뒤 저녁 만찬과 네트워킹 행사가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이 흩어지지 않게 붙잡아 두기엔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은 없었을 테니까.
나도 그 네트워킹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미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 재미없는 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확실시되었다. 경험 삼아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녁 만찬으로 예약된 호텔 뷔페는 맛있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뒤늦게 부스를 정리하면서 늦게 끝날 만찬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다 얘기하자, 팀원들은 세상 불쌍한 눈빛으로 나를 위로해 줬다. 누군가는 고생이 많다고 한다.
이 말이 벌칙처럼 들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