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시작이요
비가 오기 전의 공기가 늘 그렇듯,
사건이 오기 전에도 낌새는 있었다.
공기는 무겁고,
말은 느려졌고,
눈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알았다.
무너질 뭔가가 오고 있다는 걸.
하지만 예상한 건 사건이었다.
사고, 실수, 운명 같은 거.
그런데 나를 무너뜨린 건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나를 바라보던 눈빛,
내 말을 외면하던 표정,
아무 말 없이 돌아서던 뒷모습.
그게 장마의 시작이었다.
사건은 지나간다.
기억은 흐려지고,
날짜는 바뀌고,
계절은 넘어간다.
하지만
사람이 남긴 감정은,
장마처럼 매해 다시 찾아온다.
무너졌던 그날의 그 말투,
차갑게 닫혔던 그 공기,
말없이 등 돌렸던 그 사람.
장마가 시작될 때마다
나는 그날을 다시 걷는다.
비는 내리고,
그 사람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다.
이제는 안다.
운명은 사람처럼 아프지 않다.
실수는 사람처럼 깊게 새겨지지 않는다.
진짜로 나를 무너뜨린 건
그날의 그 사람,
그리고 그가 끝내 말하지 않았던 진심이었다.
아무리 그림자들이 모여있더라도 오늘 밤은 추울 텐데
난 더워죽겠어. 내 속이 활활 불 타오르네.
집에서도 우산 펼치고 있어라.
안 그럼 세상에 존재하는 가짜파동 다 없애버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