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인간이 아닌 것들에게
내가 다닌 회사들은 여러 개지만 오래 살아남지 못했다.
아니 오래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일 기계 처음이라고 점심시간을 빌려 정중히 부탁하고 사과하고 알려달라 했지만
그 말을 들은 회사원은 회사 다닌 지 5년 전이라고 제가 기억을 어떻게 하냐고 저 시간 없다고 그랬다:
회사에서, 조직 안에서,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가볍게.
아무 생각 없이.
하지만 나는 오래 아팠다.
그 말이 내 감정을 무시한 순간,
그 표정이 내 고통을 스쳐 지나간 순간,
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부정당했다.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여기는 감정이 없어도 되는 곳처럼 굴러갔던 거다.
이곳은
‘기계가 다니는 회사’였다.
속도, 실적, 성과, 효율.
사람의 감정보다 빠름이 우선이고,
눈물이 사치가 되는 공간.
그 안에서 나는
‘사람’이 아닌 척하며 버텼다.
아픈 티 안 내고,
상처도 업무처럼 정리하고,
무례한 말도 “괜찮습니다”로 삼켰다.
그게 회사였다.
그게 지금의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기계처럼 굴고 싶지 않다.
가볍게 한 말에
누군가는 밤새 뒤척이고,
툭 던진 농담에
누군가는 무너지고,
외면당한 감정에
사람은 죽는다.
어렸을 때부터 ”쟨 어린애가 핸드폰만 하고 뭐가 되려 그래? “라고 친척이란 이름을 올리고 무례하다 부를 수 있는 영혼들이 매번 우리 부모님에게 무례한 말을 내뱉었었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회사는,
기계가 다니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다니는 곳이어야 한다.
감정이 들려야 한다.
눈물이 허용되어야 한다.
말이 아닌, ‘마음’이 통과되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일하고 싶다.
그게
사람이 일하는 방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