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에서 내려 땅을 밟던 날의 날씨와 공기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야자수와 푸른 하늘, 생전 맡아보지 못했던 청정도 A급의 공기까지.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상쾌한 기분은 마치 게임 리셋버튼을 누른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부터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까지 외국인이 드물던 한국에서 벗어나는 경험은 내 마음에 다시 꿈을 불어넣었다.
처음 들어간 어학원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같이 놀러 다니고 하며 점차 이곳에서의 생활이 나에게 더 맞는다는 착각에 빠져갔다. 아직 차가운 현실에 데어보지 않은 채 긍정회로만 돌리는 어린아이였다.
어학원을 마치고 대학교 수업을 시작하면서 악몽은 되살아났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는 교수님, 공통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동기들에 뭐든 주체적으로 하는 이 나라 사람들은 대학생활에 그 어떤 강요도 하지 않았다.
동아리부터 파티까지 전부 인맥을 통해 알음알음 가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여기라면 다를 줄 알았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또 제자리로 돌아왔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나라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놀이동산이었지만, 이민자의 입장에서 이 나라는 또 다른 벽이자 미지의 정글이었다.
어디든 발 디딜 곳을 찾아야 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며 배경이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었다. 결국 어디를 가든 내가 가는 곳은 시간이 흐르면 검은 물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박정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의 한 구절처럼 떠날 때부터 다시 돌아갈 것을 알게 되어버렸다. 학부 성적은 당연 F투성이었고, 이대로 있다가는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정신을 차리고 당시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알바를 뛰며 존재감은 없더라도 나한몸 벌어먹을 수 있는 정도의 사람 구실을 했다. 물론 만족스러운 생활은 아니었지만, 아이처럼 주저앉아 신세한탄만 할 수는 없었기에, 차오르는 잡생각을 떨치고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해갈 때쯤, 다시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두 달간의 어학연수. 다니던 대학교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으로 과정을 마치면 학점까지 인정해 준단다. 이미 결과를 아는 길을, 다들 미쳤다고 할 길을, 지금 뛰는 심장이 증명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마음이 갔다.
'그래, 두 달 여행한다 셈 치고 다녀오자. 앞으로 이런 기회 다신 없을 텐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갔다 오자.' 고심의 고심 끝에 잔소리하는 머리를 살살 달래서 끝내 인생을 뒤바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