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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인생은 마치 도자기를 빚듯_

나라는 와인은 얼마나 좋은 향을 낼 수 있는가

by 현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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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와인을 좋아한다

제대로 알고 있는 지식이 있다거나

뚜렷하게 좋아하는 품종이 있는 건 아니지만

와인을 향유할 때의 내가 행복을 느낀다는 것을 안다


와인에 대해 자세히 알진 못해도

좋아하면 으레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법이다


와인을 알아가다 가장 흥미로웠던 사실 중 하나는

잔에 따라 와인의 향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와인도

맞지 않는 잔에 담으면 본연의 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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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지 않는 잔

마치 사람을 비유한 듯싶다

사람의 인생은 마치 도자기를 빚듯

꼭 나라는 그릇을 만들고 있는 것만 같다

다른 사람이 내게로 다가오면

다르게 생긴 접시 두 개를

어떻게든 맞물리려 끙끙대고,

어쩔 때는 접시를 녹여 한 뭉치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는 흘러넘치는 와인의 형태로

서로의 그릇에 첨벙하고 빠져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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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그릇의 형태를 띠는가

나라는 와인은 얼마나 좋은 향을 낼 수 있는가


인생에서 하는 모든 고민의 끝은

결국 다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이가 처해있는 환경은 다 다르다만

우리들은 좋은 사람, 필요한 사람, 잘 맞는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애쓴다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은 욕구도 마찬가지다


특정모양의 그릇에 나를 맞추려다 보면

나의 내용물도 영향을 받는다.


시간이 갈수록 와인의 상태는 달라진다

내가 나의 와인을 열어둔 채 방치하던 건 아닌지,

나와 맞지 않은 그릇에 과하게 집착하던 건 아닌지

주기적으로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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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답지 않은 선택 또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끼워 맞추려 애쓰는 경우가 있다


어떨 때는 책임감으로,

어떨 때는 두려움으로,

어떨 때는 나 조차도 혼란스러움으로,


우리는 종종 그런 선택을 한다


삶에서 내 하루가, 내가 흔들리고 있다면

나의 부족이나 나의 잘못이 이유가 아니라

어쩌면 지금 나를 담고 있는

그릇이 맞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요즘 자주 지치고,

하루하루가 자연스러운 나와 다르고,

내가 누구인지 혼란스럽다면

내가 담긴 그릇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우린 때때로 모든 일에서 스스로를 바꾸려 애쓰지만

문제는 나와 함께하는 것들의 그릇일 수 있다

그릇이 바뀌면 나도 전혀 다른 향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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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어울리는 그릇은 다르다

어떤 이는 혼자 있을 때 더 빛나고,

어떤 이는 함께일 때 안정해진다

어떤 이는 조용한 삶에서 온전해지고,

어떤 이는 북적이는 삶에서 밝아진다

어떤 이는 나와의 시간 속에서,

어떤 이는 다른 이들과의 교류 속에서 힘을 낸다


나를 바꿔 나가면서도

향이 살아나도록 더 잘 담아줄 그릇을 가진 사람,

자신의 그릇을 열심히 빚으며 살아가는 사람을

찾고 갈망하는 것.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길의 첫걸음이다

지금 나는 어떤 잔 속에 담겨 있는가

그리고 그 잔은 나라는 와인의 향과 맛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는가


바쁘게 돌아가던 삶 속에서

잠시 가만히 서서 나 자신과

그 주변의 잔들을 살펴보자


아프게 걸려있던 유리조각을 삼키고는

깨진 잔을 다듬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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