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순, <낙원>/임용련, <에르블레 풍경>

by 길벗

중앙일보 권근영 기자가 쓴 <아주 사적인 미술관 : 이건희 홍라희 마스터피스>라는 책에서 서양화 같기도 하고 전통 산수화처럼 보이기도 하는 특이한 작품을 만났다. 처음 들어보는 화가 백남순의 '낙원'이다. 8폭 병풍이다. 병풍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본다. 맨 오른쪽의 폭포와 산 같은 동양화 배경에다 서양 사람과 서양 스타일의 집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에 좋다. 처음엔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라는 '님과 함께'가 떠올랐다. 아니면 어떤 서사가 깃든 신화를 묘사한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권근영 기자의 해설을 보자.


맨 오른쪽 낙원 입구에 결혼 서약을 하듯 남녀가 서 있다. 폭포수 쏟아지는 낙원으로 들어간 여자는 아이를 낳아 키우고, 남자는 고기잡이를 한다. 서로 보듬고 성장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리라 기원하는 것 같다. 쏟아지는 폭포수와 야자수, 험산 준령과 푸른 초원, 누드의 인물과 서양식 집... 동서양의 이상향이 뒤섞인 기묘하고 신비로운 그림이다. 조선의 '몽유도원도'나 '무이 구곡도', 유럽의 아르카디아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낙원이다.


백남순(1904~1994)은 한국 최초로 파리에 유학한, 서양화 도입 첫 세대의 여성 화가다. '낙원'은 1936년 작품으로 백남순이 평안북도 정주에서 그린 후 친구의 결혼 선물로 전남 완도로 보냈다. 반세기 가까이 친구가 간직하던 것을 삼성가에서 사들였고, 2021년 이건희 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며 세상에 알려졌다.

SE-c0a283c2-602b-421d-b0fb-baf4cd0b2268.jpg?type=w1 백남순, <낙원>, 1936, 캔버스에 유채, 8폭 병풍, 173x372cm, 국립현대미술관
SE-894a56b5-7e9a-4e44-acb3-9ed6a1b55bc8.jpg?type=w1 임용련, <에르블레 풍경>, 1930, 카드 보드에 유채, 24.2x33cm, 국립현대미술관


임용련(1901~?)은 예일대 미대를 수석 졸업하고 파리에서 유학 중 백남순을 만나 결혼한다. 두 사람은 파리 근교 센 강이 내려다보이는 에르블레에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임용련이 <에르블레의 풍경>이란 작품을 남겼다. 둘은 결혼 후 곧바로 귀국해 부부전을 개최하기도 했는데 이때 소설가 이광수는 '조선의 한 쌍의 보물'이라고 극찬을 했다. '에르블레의 풍경'은 부부전에 전시됐던 작품 중 현존하는 세 점 중 하나다.

두 사람은 같이 작품 활동을 하였으나 부부의 작품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대부분 소실되었다. 임용련은 정주의 오산학교에서 영어와 미술을 가르쳤는데 이때의 제자 중에 이중섭도 있었다. 임용련은 6.25전쟁 때 납북돼 현재까지 생사를 알 수 없고 백남순은 자녀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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