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가장한 말, 그리고 진짜 해야 할 말에 대하여
“내가 할 말을 못 하면 죽는 병이 있어요.”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땐, 누군가의 절박한 속마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했던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서는 이 대사가 전혀 다른 의미로 쓰였습니다. 자기 아들과 여주인공 금명의 결혼을 반대하던 여자가 금명의 어머니에게 면전에서 던진 말이었습니다. 자기보다 아래라고 여긴 사람을 향한 조롱과 모욕, 그 속에 깔린 오만과 경멸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녀는 진심을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심처럼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할 말을 못 하면 죽는 병이 있어요”라는 말은 자기 감정을 가장한 공격이었습니다. 그 순간, 말은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칼이 되었습니다. 상대의 자존심을 베어내고, 자식을 위한 정의인 양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그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며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말로 사람을 찌르듯 공격하고, 누군가는 침묵으로 자기방어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유형이 겉보기에는 전혀 달라 보이지만 때로는 동일한 본질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마음’에서입니다.
학창시절부터 친했던 한 친구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늘 말합니다. 자기는 너무 소심하고 상대를 배려하느라 하고 싶은 말을 못 해서 병이 났다고. 하지만 저는 기억합니다. 학창 시절 그녀는 종종 날카로운 말을 쉽게 던지곤 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은 조심스럽게 말한다고 믿고 있는 듯하지만, 말끝에 누군가를 찌르는 문장을 숨겨 던지곤 합니다. 그리고는 “나는 원래 할 말을 못 해서 힘들어”라며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듭니다. 그녀는 정말 ‘할 말을 못 하는’ 사람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살지 않습니다. 때로는 감정이 상해도, 말이 헛나올까 봐, 혹은 상대를 배려하기 위해 삼킵니다. 그런 조심스러움은 겁이 아니라 성숙입니다.
반대로, 말의 자유 뒤에 숨어 있는 감정의 정당화는 누군가에게 평생 남을 흉터를 남깁니다. “나는 원래 솔직한 사람이야.” “할 말은 해야지.” 그렇게 던지는 말들이 때로는 위로보다 더 날카롭게 상대를 찌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말하기보다 말하지 않기를 연습 중입니다. 하고 싶은 말보다, 해야 할 말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 말을 꺼내기 전, 마음속으로 한 번 더 묻습니다.
이 말은 나를 지키기 위한 말인가, 누군가를 찌르기 위한 말인가?
이 말, 지금 꼭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