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에도 사랑은 이렇게 따뜻했다

무덤 속에서 발견된 400년 전 사랑 이야기

by 아우리

400년 전에도 사랑은 이렇게 따뜻했습니다.

그 증거는 뜻밖에도 한 무덤 속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오래전 우연히 보았던 KBS 역사스페셜 프로그램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찾아보니 제목은 "400년 세월 동안 간직해온 남편의 사랑 - 진주 하씨 부인의 무덤에서 발견된 172통의 편지"였습니다.

경북 달성군의 어느 산속, 400년 전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 뭉치는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 편지들은 하씨 부인에게 남편 곽주와 그들의 자식들이 보낸 것들이었는데, 특히 남편 곽주가 쓴 편지가 많았습니다. 편지가 발견된 그 순간, 마치 닫힌 시간의 문이 열리는 듯했습니다.


편지에 담긴 따뜻한 사랑

곽주는 떨어져 사는 아내에게 자주 안부를 전했습니다. 가정의 사정으로 함께 살 수 없었기에 편지로 마음을 나눴던 것입니다. 그의 편지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습니다. "무명을 아끼려다가 추운 날씨에 병이 들진 않을까 걱정이네." 출산을 앞둔 아내를 위해 꿀과 참기름을 보내며 원기를 북돋우려던 그의 마음은 글씨마다 번져 마치 어제 쓴 편지를 읽는 듯 생생했습니다.

그 시대는 여성이 자신의 이름조차 갖지 못하고 목소리도 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가혹했던 시대 속에서도 곽주는 따뜻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의 편지 속 아내와 자식들은 그저 돌봄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건강을 걱정했고,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따뜻하게 바라봤습니다. 차가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곽주는 마음만큼은 따뜻하게 지켜냈습니다.


시대를 넘어 닿는 사랑의 흔적

곽주의 편지를 보며 저는 제 외조부모님의 따뜻했던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고 가난했던 시절을 함께 견뎌낸 두 분. 외할아버지는 아무리 바빠도 1년에 한 달, 서울에서 멀리 외할머니의 고향 밀양까지 휴가를 주셨다고 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외증조부모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기회가 줄어들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외할머니에게 너무나 소중했을 것입니다.

외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달이 얼마나 기다려졌는지 몰라." 밀양의 산자락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고향 친구들과 나누던 소박한 웃음이 외할머니를 버티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시간을 선물해준 외할아버지의 마음이 있었기에 두 분은 험한 시대를 함께 건너올 수 있었습니다. 곽주와 외할아버지, 시대는 달라도 사랑을 전하는 마음은 닮아 있었습니다.

시대가 가혹했다고 모두가 차가웠던 것은 아닙니다. 시대가 그러하니 나도 그러하다는 것을 당연시하지 않으려 합니다.

400년 전 조선의 한 가정에도 사랑과 배려, 깊은 이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400년을 넘어 우리 앞에 나타난 그 편지들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울림을 줍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전하는 법을 종종 잊고 삽니다. 한마디 안부, 작은 배려, 따뜻한 말 한마디. 그런 것들이 남겨진다면, 그것이 곧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마음을 건넨다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일입니다. 그 따뜻한 흔적은 남아, 누군가의 마음을 또다시 데웁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사랑을 남기고 있을까요. 잠시 멈추어 생각해 볼 일입니다.

휴대전화 메시지 한 줄, 진심 어린 손 편지 한 장, 혹은 짧은 통화도 이 시대의 따뜻함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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