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이 사랑했던 한국의 ‘배려’를 다시 떠올리며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길 가다 이유 없이 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 사소한 다툼이 분노로 번지는 소식들.
“이렇게 무서운 세상이었나?”
누군가의 한숨 섞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게 들립니다.
하지만, 이 땅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있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196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펄 벅 여사는 처음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고궁이나 왕릉 같은 화려한 유산이 아니라, 평범한 농부의 삶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해가 지는 시골길에서 두 마리 소가 볏단을 실은 달구지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직접 볏단을 지게에 지고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왜 굳이 짐을 지고 가세요?”라는 질문에 농부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소도 하루 종일 일했잖아요. 짐은 나눠서 져야죠.”
그 짧은 한마디는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이었습니다. 말 못 하는 짐승의 고단함까지 헤아리는 마음, 그것이 그녀가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한 ‘한국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또 다른 날, 펄 벅은 감나무 끝에 달린 몇 개의 감이 남겨진 것을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왜 따지 않고 두었을까?
농부는 말했습니다.
“까치밥이에요. 겨울에 새들이 먹을 수 있도록 남겨둔 거죠.”
사람만을 위한 삶이 아닌, 자연과 생명을 품은 삶.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한국에서 찾고 싶었던 건,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고요.”
펄 벅 여사가 사랑한 한국은 배려와 따뜻함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 마음은 어디쯤 머물러 있을까요. 좁은 길 하나 양보하지 못해 소리를 지르고, 눈빛 하나에도 분노하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누군가 쓰러져 있어도 모른 척 지나치는 뉴스도 더는 낯설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런 세상일수록 우리는 잊고 있던 마음을 더 자주 꺼내야 하지 않을까요.
배려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소의 짐을 나눠 지는 마음, 새를 위해 감 하나를 남기는 여유. 그런 작은 배려가 모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듭니다.
펄 벅 여사가 반했던 한국, 그 감성은 아직 우리 안에 있습니다. 조금 무뎌졌을 뿐,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말을 한 번 더 따뜻하게 건네는 것. 급한 마음에 먼저 나가려다 양보하는 것. 길 위의 까치밥 하나, 우리 마음에도 하나쯤 다시 매달아보면 어떨까요.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우리 안의 따뜻함은 더 소중해집니다. 그 마음을 오늘, 다시 꺼내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