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여전히 아이였다

지역아동센터에서 마주한 현실 속 청소년들

by 아우리

요즘 뉴스를 보면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형이 동생을 살해한 사건, 중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고등학생들, 유괴된 아이가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야기까지. '이제 아이들도 무섭다'는 말이 낯설지 않게 들립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단정 지어도 되는 걸까요?

어떤 현상은 설명보다 관찰이 먼저라는 걸, 저는 군에서 배웠습니다.

30년 가까이 군에서 조직과 임무, 책임 속에 살아왔습니다. 전역을 앞두고, 바리스타 수업을 듣고, 드론을 날리고, 빵을 굽고, 여행도 다녀보았습니다. 재미는 있었지만, 오래 마음을 붙잡을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즈음, 지역아동센터에서 고등학생 영어 수업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어 정도는 가르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지원했습니다. 센터는 낡고 복잡했지만, 아이들을 향한 복지사 선생님들의 태도는 단단하고 따뜻했습니다. 공간은 부족했지만, 마음은 넉넉해 보였습니다. 그렇게 저 역시 누군가에게 작은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서운 10대”라는 말 너머

처음 만난 아이들은 뉴스 속 '무서운 10대'와는 달랐습니다. 다문화 가정, 한부모 가정, 조손 가정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낯설지 않은 얼굴들. 어쩌면 저도 어린 시절에는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모든 아이가 반갑게 다가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질문을 회피하거나 눈을 피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작은 칭찬에도 눈빛이 흔들렸고, 이름을 불러주자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무기력하거나 거칠어 보였던 아이도 어느새 수업을 기다리는 평범한 학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청소년을 이해한다는 건, 무조건 감싸거나 단죄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었습니다.

문제 행동에는 분명한 선이 필요합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은 경계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들여다볼 여지는 남겨두어야 합니다. 때로는 그 이면에 방임, 상처, 혹은 오랫동안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도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

하루 네 시간, 영어를 가르치며 아이들의 하루를 묻습니다. "오늘 학교 어땠어?" "이 문장은 어떻게 해석할까?" 그 소소한 시간 속에서 아이들과 조금씩 가까워지고, 저 자신도 느긋해졌습니다.

그러다 요즘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말을 들으면, 잠시 멈추어 서게 됩니다. 정말 그게 전부일까요. 그 말 속에는 아이들만의 책임이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어른들과 사회의 책임이 함께 묻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이들은 더 이상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배우고, 반응하고, 때로는 거칠게 흔들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을 무서워하거나 이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차분히 지켜보며 필요한 선을 세우고, 가능성의 문을 열어두는 것입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보내는 이 시간은 단순한 봉사나 직업이 아닙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저는 어른으로서의 제 자세를 점검하고 있습니다. 관찰하고, 반응하고, 때로는 멈추는 법. 그 균형 속에서 제가 다시 배우는 중입니다.

오늘도 저는 센터로 향합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아이였고, 저는 이제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들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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