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끝났다”는 경고 앞에서

우리가 외면한 현실이 이제야 말 걸어온다

by 아우리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이 제게 하나의 영상을 던져주었습니다.

"SOUTH KOREA IS OVER."
"대한민국은 끝났다"는 너무 단정적인 제목에 처음엔 피식 웃었습니다. 또 하나의 자극적인 썸네일일 거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영상을 끝까지 본 뒤, 저는 한참을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을, 그것도 국제적인 시선으로 뼈아프게 보여준 이 영상이 더 많은 이들에게 경각심을 주기를 바랐습니다.


숨겨야 했던 임신, 말할 수 없던 시절

저는 90년대 중반 여군 장교로 임관했습니다. 당시엔 임신금지 규정이 폐지된 지 몇 년이 지난 후였지만, 군 조직의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 여군단장 출신 선배에게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입양이래요. 군인 신분으로는 직접 낳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뒷이야기는 달랐습니다.
“사실은 직접 낳았대. 열 달을 숨기고, 출산하고, 바로 복귀했대.”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조직 안에서 비밀처럼 회자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모든 걸 말해주었습니다. 그 시절, 여군이 아이를 낳는다는 건 죄도 아니고 불법도 아니었지만, 숨겨야만 했던 일이었다는 것을.


열린 문, 그러나 남아 있던 벽

1999년, 국방부는 여군에게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공식적으로 허용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획기적인 변화였습니다. 그러나 제도가 생겼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무렵 아이를 넷이나 낳고도 당당히 복무를 이어간 후배가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지만, 동시에 걱정도 되었습니다.

“너무 무리는 아닌가…”
“조직이 감당할 준비가 되었을까…”
“혹시 또 누군가 그 아이들을 문제 삼진 않을까…”

그 걱정은 단순히 후배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 안에 여전히 남아 있던 과거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제도는 바뀌었지만, 우리의 의식 속에는 여전히 그 시절의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끝났다”는 경고가 남긴 질문

유튜브 영상은 반복해서 말했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 중이며,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인구는 4세대 후 5%만 남게 될 것이라고.

그 말은 단순한 통계 수치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현실의 소리이자, 오래전부터 피부로 느껴온 감각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학교가 문을 닫고,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지방의 마을이 유령 도시가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이미 조용히 붕괴 중인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또한 그 모든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 물음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아이 낳기 어려운 나라를 만들어 왔을까요?
왜 사람들에게 ‘가족을 꿈꾸는 일’이 두렵고 버거운 일이 되었을까요?

아이를 키우는 일, 직업을 이어가는 일, 돌봄을 나누는 일이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남겨져 있다면, 그 사회는 언젠가 반드시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끝났다.” 그 말이 처음엔 무례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 말이, 오랫동안 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정직한 시작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 사회가 정말 끝장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끝났다는 경고’가 있어야만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변화가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싶은 사회, 돌봄이 죄가 되지 않는 사회, 침묵 대신 말할 수 있는 사회. 그 사회를 꿈꾸는 이들이 더는 조용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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