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다 작았던 건 마음이었다
얼마 전, 서울대 졸업생 커뮤니티에 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제목은 하소연처럼 시작되었지만, 곧 분노와 혐오, 폭언으로 이어지며 보는 이를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글쓴이는 소개팅에서 키가 작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며, 그 책임은 작은 키를 물려준 부모에게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자기혐오, 더 나아가 여성 혐오와 사회 전체에 대한 증오로 번졌습니다.
“죽기 전에 반드시…”, “그 시절은 강간으로도 결혼하던 시대였다”는 말로 아버지 세대조차 폄훼했습니다.
그의 상처는 차가운 냉소가 되어 혐오와 분노로 세상을 향했습니다.
그를 거절한 상대는 물론, 자신을 낳은 부모, 사회 전체를 탓했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의 끝에는, 자기 연민에 갇힌 외로움과 무력감이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작은 키는 유전입니다. 하지만 작은 마음은 선택입니다.
그가 진짜 두려워한 건 키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거절당한 자신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마주하는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를 탓해야만 견딜 수 있는 마음.
그건 고통에 빠진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 사회 전체가 앓고 있는 구조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꾸 타인을 향해 화살을 날립니다.
“사회 탓, 부모 탓, 여성 탓…”
그렇게 분노는 가장 약한 핑계를 타고 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구조가 생깁니다.
"나는 괜찮은데, 세상이 나를 이해 못해."
그 구조는 결국 혐오로 바뀌고,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서울대 졸업장도, 스펙도, 외모도 누군가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자격’이라 착각할 때, 사람은 스스로를 무너뜨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상처를 말하지 못하면, 그 말은 곧 분노로, 그리고 타인에 대한 공격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혹시, 저도 누군가를 탓하는 방식으로 제 모자람을 감춰본 적은 없었을까요?
혹시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작게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요?
작은 키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마음은 문제입니다.
그리고 작은 시선이 만든 그림자가 지금 우리 사회를 덮고 있음을 느끼곤 합니다.
결국 우리 사회를 덮은 거대한 그림자는, 작은 마음과 시선이 모여 만든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