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곁에서 든 생각
군에서 30년을 일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저는 늘 빠르게 판단하고, 빈틈없이 계획하며, 결과로 증명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조금 더 느리고, 보람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일이 지역아동센터에서 고등학생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영어를 가르치는 일만 놓고 보면 더 나은 조건의 자리도 많습니다. 학원이나 과외 시장에서는 실력만큼 수입도 보장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곳은 이미 경쟁이 치열하고, 많은 사람이 몰려 있습니다. 반면 이곳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잘 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제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생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 만난 아이들 중에는 ‘공부’라는 걸 거의 처음 해보는 듯한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기초적인 문법조차 막막해하고, 단어 뜻도 잘 모르고, 문장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아이들. 처음엔 놀랍기도 했고, 솔직히 조금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누가 그 아이들에게 제대로 공부하는 이유를, 왜 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준 적 있었을까요. 공부는 단순히 성적이나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나를 표현하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한 과정입니다.
물론 지금 아이들에게 그 모든 걸 가르치기엔 저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건 너에게 필요한 힘이야”라고 말해줄 수는 있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마음 한쪽에 닿기를, 그게 지금 제 바람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좋은 마음만으로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이 시간만큼은 제 삶에 의미가 있었으면 하고, 제가 가르친 아이들의 삶에도 작은 흔적이 남기를 바랄 뿐입니다.
모든 걸 걸고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아이가 “아, 공부가 이런 거였구나” 하고 한 번쯤 눈을 반짝여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느낍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는 아이를 키우거나, 가르치거나,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공부는 아이가 알아서 해야지,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곁에서 지켜보니, 아이들은 단순히 “공부하라”는 말보다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듣고 싶어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넌 이걸 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자신을 믿을 근거조차 찾지 못하고 혼자 무기력해집니다. 그게 지금 이 아이들의 자리가 아닐까, 요즘 더 자주 생각합니다.
공부는 성적이 전부가 아니라, 삶을 살아갈 최소한의 기반을 만드는 일입니다. 그걸 함께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어른의 존재만으로도 아이들은 다시 한 발짝 내디딜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준비되어야 할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 곁에서 우리가 조금 더 천천히, 함께 걸어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곁에 서면서, 저 또한 ‘그냥 어른’이 아닌, 기꺼이 손을 내밀어주는 ‘준비된 어른’이 되어야 함을 매일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