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이후, 관계에 대한 다시 쓰기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더 단단해진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더 조심스럽고, 더 복잡해지고, 더 외로워집니다. 젊을 땐 그냥 넘겼던 말 한마디가 마음에 오래 남고, 가까웠던 친구의 행동 하나에 오래도록 상처받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오랜 친구와의 관계가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저와 아주 친했던 친구였습니다. 제게도 다정했고, 우리 엄마에게까지 친밀하게 대해줬던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그 친구의 삶은 여러 굴곡을 겪었고, 자연스레 우리의 관계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부터는 ‘내가 기억하는 그 친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적, 그냥 친구로서 좋았던 기억은 여전히 있었지만,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말없이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 결정은 쉽지 않았지만,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했습니다.
그렇게 한 사람을 보내고 나니, 마음 한편에 질문이 남았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관계를 새로 세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구나.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고 다 성숙해지는 건 아닙니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게 너그러워질 줄 알았지만, 어떤 분들은 오히려 마음의 문을 더 굳게 닫아버리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더 까다롭고, 더 조심스럽고, 더 냉소적으로 변해갑니다.
그 변화는 제 자신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관계를 유지하는 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예전처럼 쉽지 않습니다. 더 이상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넘기지 못하는 순간들이 생깁니다. 저의 경계는 선명해졌고, 저를 지키기 위한 선택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우연히 보게 된 한 강의에서, 심리상담가이자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 활약 중인 이호선 교수는 “친구는 나의 기억을 완성해 주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오랜 친구들은 제가 기억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기억해 주는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친구 관계를 무조건 이어갈 수는 없습니다. 서로가 다른 방향으로 살아왔고, 그 사이에 생긴 균열을 억지로 메우려 애쓰는 건 오히려 상처만 남기기도 합니다. 관계는 선택이고, 우정은 지속적으로 다듬어야 유지됩니다. 손절을 쉽게 말하는 시대지만, 때로는 잘라내는 용기보다 조심스럽게 물러서는 지혜가 더 필요합니다.
한편, 이 교수는 이렇게 관계를 정리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관계 맺기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했습니다. 중년 이후에도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야 하며, 관계의 ‘확장’과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친구를 만날 시기”라는 그녀의 말은 마음 한편에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좋은 친구를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는 좋은 친구일까?’라는 질문을.
어쩌면 중년의 우정은, 바로 이 질문의 무게를 이해하는 데서부터 다시 시작되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