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온도가 식어간다

기자정신을 잃은 시대의 신뢰 이야기

by 아우리

며칠 전, 국정감사에서 주요 언론사 기자들이 허위 정보를 유포하고 주가 조작에 가담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습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자리에 있던 기자들이 오히려 시장을 교란하고 이익을 챙겼다는 뉴스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제는 어떤 뉴스를 믿어야 하는 걸까요.


기자정신이란 말의 온도

대학을 졸업한 뒤 잠시 작은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직원도 많지 않은 작은 곳이었지만, 그 안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당시 제 편집장은 매일같이 말했습니다.

“기자는 권력을 감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 앞에 겸손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특집기사를 준비하느라 며칠씩 밤을 새울 때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문장을 고칠 때도, 그 말은 제게 하나의 신호처럼 작동했습니다.

그때는 신문과 방송이 정보를 독점하던 시대였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에는 무게가 있었고, ‘팩트 확인’과 ‘공익성’은 당연한 원칙이었습니다.
비록 작은 잡지사였지만, 우리는 사회의 작은 거울이 되고 싶었습니다.


클릭이 진실을 삼킨 시대

2000년대 이후, 세상은 급격히 바뀌었습니다.

신문보다 빠른 인터넷 뉴스, 뉴스보다 즉각적인 SNS가 등장하면서 언론은 ‘공공의 사명’보다 ‘클릭 수’에 더 민감해졌습니다.

속보 경쟁이 치열해지자 기사 검증 단계는 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데스크, 부장, 편집국장을 거쳐야 송고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속보 버튼 하나로 세상에 퍼집니다.

그 사이에서 진실은 종종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바뀌고, 팩트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포장됩니다.

이번 주가 조작 사건은 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줍니다.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받고 호재성 기사를 써주는가 하면, 미리 정보를 입수한 뒤 주식을 사고 자신이 쓴 기사로 주가를 올려 차익을 얻은 기자들도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업, IR 대행사, 언론사는 하나의 범죄 생태계로 얽혀 갔습니다.

기자는 그대로인데, 기자정신을 담보해 줄 시스템이 사라진 것입니다.
언론은 사회의 ‘눈’이 아니라 트래픽을 위한 ‘손가락’이 되었습니다.


신뢰를 다시 세우는 일

하지만 이 ‘진실의 실종’이 과연 언론계만의 문제일까요?
요즘 저는 이것이 우리 사회 전반의 축소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정확함보다 속도를, 진심보다 결과를 앞세우는 풍경은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직업의 일상 속에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이미지로 말하고, 교사는 평가에 쫓겨 아이의 마음을 들을 여유를 잃습니다.
의사는 환자보다 차트를 먼저 보고, 공무원은 민원보다 절차를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진실이 밀려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기자정신을 ‘언론의 윤리’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결국 신뢰를 회복하려는 모든 사람의 마음가짐일지도 모릅니다.
직업의 윤리는 곧 사람의 신뢰에서 시작되고, 그 신뢰가 무너질 때 사회는 스스로의 뿌리를 잃습니다.

진실을 향한 태도, 그건 기자에게만 필요한 덕목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다시 세워야 할, 신뢰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저마다의 자리에서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믿음의 온도를 다시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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