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언어를 잃을 때 불이 된다

분노의 근원을 바라보다

by 아우리

“아, 인생이 피곤해요.” “그냥 짜증 나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서 종종 듣는 말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투정처럼 들리지만, 들을수록 마음이 불편합니다.
왜 이렇게 피곤하고 짜증 나는 걸까.
내 지난 글들을 돌아보니, 유난히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 많고,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분노는 어느 날 갑자기 솟구치는 감정이 아니라, 오랫동안 말하지 못한 마음이 쌓여 폭발하는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요즘은 ‘화를 다스리는 법’보다 ‘마음을 말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언어를 잃은 감정

저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자주 실감합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피로와 짜증이 묻어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묻으면, 대답은 늘 비슷합니다. “그냥요.”
무엇이 자신을 힘들게 하는지조차, 왜 짜증이 나는지를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감정은 태풍처럼 몰아치는데, 그것을 담아낼 그릇(언어)은 너무나 작고 약합니다.

그래서 어떤 아이들은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거친 행동이나 침묵으로 쏟아내기도 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말로 다룰 수 있어야 상처를 키우지 않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데 말입니다.

왜 요즘 아이들은 이토록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까요?
저는 그 원인 중 하나가 짧은 문장과 빠른 화면 전환에 익숙한 미디어 환경에 있다고 봅니다. 게임이나 숏폼 영상 속에서는 감정의 복잡한 결을 차분히 들여다볼 시간이 없습니다. ‘좋아요’, ‘싫어요’, ‘짜증 나요’와 같은 단편적인 반응만 남을 뿐입니다.
생각을 깊게 쌓고,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하는 훈련의 기회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알아달라는 분노

생각해 보면 저희 집안에도 한 성깔 한다는 그런 분이 계셨는데요. 성격이 불같다고 불리던 어른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속마음을 직접 표현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분의 분노는 언제나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는 울분으로 흘렀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건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표현할 언어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어른들은 오랫동안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습니다.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나약한 것이고, 힘든 티를 내지 않는 것이 강인함의 증거라고 믿었습니다. ‘이심전심’이라는 말로 서로의 침묵을 이해하길 바랐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고, 억눌린 감정은 결국 분노의 형태로 터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감정 표현은 성숙의 기술입니다. 누군가를 향한 분노보다 먼저, 내 안의 감정을 정확히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나 ‘폭발’과 ‘후회’의 사이를 반복하게 됩니다.


표현은 어떻게 배우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말하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시작이 자신의 진짜 감정을 구별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흔히 ‘짜증 난다’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감정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사실 ‘서운함’, ‘억울함’, ‘무력감’, ‘두려움’과 같은 훨씬 더 구체적인 감정들이 숨어 있습니다. 분노는 종종 이 진짜 감정들을 가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가면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자꾸만 다시 묻습니다.
“왜 짜증이 났어? 혹시 속상한 일이 있었니? 아니면 뭔가 억울했어?”
감정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여주는 연습을 통해,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어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지금 화났어’가 아니라, ‘나는 지금 당신의 그 말 때문에 무시당한 기분이 들어 서운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대화가 시작됩니다.
감정은 이름을 얻는 순간 다루기 쉬운 대상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관계를 회복하는 언어의 힘입니다.


말할 수 있는 용기

이처럼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아이와 어른 모두를 병들게 합니다.
그래서 혹시라도 이유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면, 내가 표현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생각해 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아이들을 가르치며 깨닫습니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인내가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 용기라는 사실을요.
오늘도 저는, 아이들이 마음을 말할 수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며 제 자신부터 연습합니다.
분노를 참는 법보다, 마음을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부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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