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태가 보여준 신뢰의 붕괴
요즘 뉴스만 틀면 무서운 소식이 들립니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들이 납치되고, 감금되고, 피싱 범죄에 강제로 동원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중에는 속아서 간 사람도 있지만, 조건도 없이 큰돈을 준다는 말에 알면서도 떠난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 가당치도 않은 유혹이 왜 통했을까,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취업난과 생활고, 불안정한 미래.
이 세 단어가 오늘의 청년을 둘러싼 현실입니다.
“이대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체념 속에서, 해외 고수입 일자리라는 구인공고는 한 줄기 탈출구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유혹의 끝에는 늘 ‘조건 없음’이라는 달콤한 꼬리표가 붙어 있었습니다. 복잡한 자격 증명도, 지긋지긋한 스펙 경쟁도 필요 없다는 그 말 한마디가, 어쩌면 모든 문턱 앞에서 좌절해 온 청년들의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마비시켰는지도 모릅니다.
그 문장 하나가 '기회'로 포장되면서, 그들은 위험과 불법의 경계로 내몰렸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혹이 통했다면, 그건 단지 누군가의 판단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이미 사회가 정상적인 길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몸담았던 군대는 고되고 위험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공무원 월급을 받으면서도, 그 대가로 내일이라도 당장 생명을 담보로 내놓는 일이 당연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단 한 번도 그 일을 가치 없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건 자부심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옳은 일을 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분명한 규칙과 약속이 있었습니다.
고된 훈련을 견디면 달콤한 휴가가 주어지고, 성실하게 임하면 계급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헌신에는 의미가 있다’는 믿음이 사람을 버티게 했습니다. 최소한 정직한 땀과 진심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신뢰가 조직을 지탱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사회는 그 믿음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성실하게 일해도 집 한 채 살 수 없고, 열심히 공부해도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잡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점점 ‘노력’이라는 단어에 확신을 잃어갑니다. 제도와 시스템이 주지 못한 보상을, 누군가는 불법과 위험 속에서 찾게 됩니다.
캄보디아의 범죄조직은 분명 외부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노린 것은, 이미 신뢰와 의미가 무너진 우리 사회의 가장 약한 틈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사태의 가장 서글픈 진실을 마주합니다.
사람들은 몰라서 속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노력과 헌신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냉혹한 체념이, 사기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을 집어삼킬 때, 사회는 가장 위험한 경고음을 울리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짓을 믿어서가 아니라, 이제 진실을 믿을 이유를 잃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다시 ‘신뢰’를 세워야 할 가장 근본적인 이유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