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교통 사각지대

교통 사각지대

by 할매

교통 사각지대로 접어든 거야. 늘 잠자기 전과 일어난 아침에는 지도를 확인하는데도 무전여행에서는 그런 경우를 가끔 맞게 되지. 지도는 말이 없거든. 표시만 있을 뿐이지.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때 그 상황은 내 마음 때문이었다는 느낌이 들어. 전전날 산적이 구미의 어느 의료기 상사에서 구입한 끌개가 내 마음에 영 들지 않았거든. 여행길에 짐이 된다 싶어서. 산적은 내 짐을 덜어주려고 산 거였는데 나는 그게 차 얻어타는 데 지장을 줄 거라 여겼지. 부피가 컸거든. 우리 둘의 배낭 부피도 큰데...


그래 나는 히치 할 때도 뾰루뚱한 마음으로 서 있었어. 그러니 누가 차 태워 주겠냐고. 마음이 곧 소통의 원천인 건데~ 물론, 차량 통행이 뜸한 측면도 있었지만.


사람도 차량도 뜸한 도로를 한참을 걷고 또 걷다보니 두세 시간 만에야 길 건너 도로변에 사람 소리 들리는

건물이 하나 나타나더라구. 산적이 뛰어가 여쭤보니 추풍령 간다고 해야 태워줄거래. 얼마쯤 기다리면 버스도 올 거라며.

하여, 김천 14K, 영동 34K 지점에서 밀짚모자 메모지를 추풍령으로 바꾸고 서 있었더니 대체나 어떤 트럭이 나타나 금새 태워주드라구. 추석 벌초가는 길이래. 그러면서 이런저런 얘기. 상가리, 중가리, 하가리며 황간 노근리 사건이 일어난 곳도 서행하며 보여주시드라구.


1950년 한국전 발발 한달 뒤인 7월 하순에, 미군에 의한 3박4일 간의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인데, 베트남

밀라이 사건과 20세기 최대의 민간인 학살로 공식 기록되고 있드구먼. 서울에 살다 그곳으로 피난갔다 참변을 당했던, 그 당시 25명의 생존자 중 한사람이었던 1923년생 정은용 옹에 의해 쓰여진 실화인데 국내에서 600 페이지 분량의 만화로는 이미 발간이 됐고, 영화는 출연진 모두 노개런티에 의해 제작되었다가 2010년

4월 15일에 개봉된다 했는데 극장에서의 개봉 여부는 나도 모르겠어. 영화 시사회는 2010년 3월에 했드구먼.

시멘트 옹벽에 선명하게 나 있는 총알 자국들. 그 흔적에 나는 광주 5.18이 떠 올랐지. 당시 나는 산수동에

살고 있었거든. 무력의 역사는 그렇게 아픈 과거의 기억을 먹으며 죽지 않고 살아 있나봐. 지워지지 않잖아~


영동 가는 길이 다른 길도 있을텐데 왜 하필 그 도로로 접어들어 하멜의 표류기 마냥 표류하다 그 차를 얻어 타게 됐을까~ 트럭 기사님은 그냥 지나칠 법도 하련만 왜 노근리 사건이 일어난 곳이라며 서행하며 보여

주셨을까~ 사람들의 스쳐가는 인연이란 참 묘한 거야~ 마치 시나리오 극작가의 대본에 있는 것 같어.


점심 때가 되어서야 영동에 다다라보니 차를 내려준 곳이 바로 시장통 노른자위였지. 즉석에서 우리는 거리 연주를 했어. 동녘 저편에 먼동이 트면 철새따라 떠나리라~ 삼뽀냐 소리가 울려퍼지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리더니 TV에서 우릴 봤다는 거야. 꽤 많은 분들이.


우리가 여행 초 출연했던 프로가 며칠 전 방영됐대. 중앙방송인데 지역에 따라 방영된 곳도 있었다누먼. 그래 영동에선 대환영을 받았지. 산적이 연주하자마자 우리를 알아보는 분들과 인사 나누랴, 들어오는 천원짜리 지폐 받으랴, 나는 싱글벙글했어.

인상 깊었던 건, 지나가던 초딩들무전 여행이 뭐냐고 서로 상의를 하더니 천원짜리 한장을 넣어줄 때 였지. 어리지만 꿈을 아는 친구들이었어.


그래 기분좋게 버스킹 좀 되겠다 싶었는데 그곳에 귀촌하여 살고 있다는 생면부지의 어느분이 보리밥 시켜놨다고 얼렁 오래. 듣고 보니 '00집' 이라는 민박 운영하며 귀촌 생활 하신다드라구. 할수 없이 연주하다 말고 점심을 맛나게 얻어 먹었지. 거기서도 또 천원짜리 지폐 얻어들고 쿠키도 얻어들고, 기념 사진 활영도 하고. 아~ 이런 날만 있으면 각설이 생활 할만 할텐데~ 호호호


헌데 재밌는 건, 보리밥 얻어먹고 그 보답으로 울 산적이 연주를 했는데, 배고플 땐 그리도 애절하게 잘 나오던 소리가 배부르니까 계속 삑사리 나는 거 있지. 그래서 사람은 변소 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거여~ 인간의 간사함이지 흐흐~

어쨌건 잘 얻어묵고 버스타고 여의리에 도착해보니 어느분께서 마중나와 계시더라구. 00별 여행 펜션 사장님. 사장님 내외분 덕에 사흘간 추적추적 내리던 비를 무사히 피했어. 거기까지 찾아와주신 00천하님 내외분과 이틀간이나 이런저런 이야기 보따리 풀어놓으며.


그곳에서의 마지막 날, 사장님의 지난 인생사, 연좌제에 따른 고충이며 보부상 하던 이야기, 일궈낸 가업 등등, 살아오신 인생 여정을 들으며 나는, 1세기도 못 채우고 가게 되는 우리네 인생살이들이 얼마나 소설 같은지 절감 했지. 비단 우리 부부 뿐 만이 아니었어. 모두들 소설 같은 삶을 살고 있더라고. 갖은 우여곡절 다 겪으며. 인구수 만큼이나 다양하게.


대학 시절 수재였다던 사장님의 사모님이 민박집의 그 많은 일들을 뚝딱 해치우는 뚝심이 어디서 나오는가 싶었더니 지,덕, 체 삼합이더라구. 그래서 사람은 외모로 평가해선 절대로 안되려니와 겪어 봐야 알아.


영동에서의 마지막 날, 태풍 볼라덴보다 더 강력하다는 산바가 드디어 북상. 내리 사흘 간을 내리던 빗줄기에 불어난 강물(펜션이 강가에 있어서)이 걱정스러웠던지 경찰들이 찾아와 점검하고 갔는데,

어라? 다른 분들이 또 오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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