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진 도로

가도가도 끝없이 이어진 도로

by 할매

직지사를 점 찍었거던. 거기서 자 볼까 하고. 그곳에 도착하여 관람료 지불하고 경내를 돌아보니 휴우~ 되게 크더라구. 깨끗이 단장되고 관리되고 있던 크고 작은 절사들. 큰 규모를 자랑하던 절이었어. 유지비 만도 엄청나게 들 것 같은~


헌데 과연 절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자, 문득 밀양의 어느 절이 생각나더라구~ 우리에게 밥 한그릇 따뜻히 주지 못하던. 아니 그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하던~ 그러면서도 중생을 구제한다고 표방할 거 아닌가~ 중생 중에서도 돈 많은 중생만 구제할런지도 모를 중생 구제. 우습게도 이 '구제' 라는 단어에는 구하여 건지다는 뜻도 있지만 몰아내어 없애버린다는 뜻도 있거든.

부자건 빈자건 구제하는 건 마찬가진데 건지느냐 몰아내느냐의 차이지.

밀양의 절은 우리에게 말도 미처 못 끝내게 하고 몰아냈지만, 울주의 절은 우리에게 노자돈 보태쓰라고 자비를 베풀었잖아~


헌데 묘하게 규모가 큰 절일수록 선별적 구제만 일삼아 보인다는 거야. 중생에게 인색하더라는 거야. 히히히~ 재밌잖아~ 비단 절 뿐이겠어~ 교회도 성당도 그러지 않을까 싶더라구.


어쨌거나, 우리는 직지 공원에서 따뜻한 점심을 얻어 먹었어. 이상스레 우리는 가는 곳마다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서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곤 했어. 공원 관리하는 분들이 참으로 멋지게 산다고, 자기들은 그러고 싶어도 못한다며 밥을 주시더라구. 무전 여행 기간 내내 그런 말을 꽤 들었지. 어찌 보면 우리는 뭇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시켜주고 다니던 셈이었어.


사실, 현실적으로 일상 탈출하기가 쉽지 않잖아. 뭇 서민들, 살기 위해, 살아내느라, 몇 푼 벌려고 어렵사리 살아가잖아.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고. 하지만 그 틀을 과감히 깨뜨리고 유유자적 유랑의 길을 떠났잖아.

어쨌건 세상은 만화경이야. 우리는 또 그곳에서 연주도 했지. 돈은 한푼도 못 벌었지만~


헌데 묘하게 버스킹 작파하고 둘이 오붓이 한가롭게 노닥거리고 있는데, 우리의 삼뽀냐며 하모니카 소리에

이끌려온 복음 전파하러 다니던 어느 기독교 여인에게서 3천원을 얻었지 뭐야.

생각지도 않았는데. 그냥 제 발로 걸어와 주시더라구. 허허허~ 세상 참~


그래 우리는 묘한 인간사, 세상사에 재미있어 하며 그곳 화장실 앞에서 하룻밤을 잤지.

그리곤 또 동 트자마자 일어나 아침을 해 먹었어. 전날 얻어 놓은 김치 하나로.

반찬으로 김치 하나면 대만족인 각설이들. 밥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 산적이 화장실 간 사이 막간의 틈을 타, 나는 주변 산책을 했어.


시비(詩碑)가 줄줄이 도열하여 나를 깎듯이 맞이하던 짧은 산책로. 그 산책로엔 내가 미스 시절 좋아하던 시인들이 많이 있더라구. 시 비석이 되어. 작은 돌비석이 되어 있던 노무현 대통령처럼.


'나두야 간다 나의 이 젊은 시절을 눈물로야 보낼거냐~~' '떠나가는 배' 의 박용철이며 '청포도' 의 이육사,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 '귀천'의 천상병이며 '꽃'의 김춘수.

김수영, 박두진, 박재상, 김소월, 김상옥, 장완영, 이상화, 윤동주, 조지훈, 서정주, 박목월.

그리고 한용운 님까지.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풀섶에 홀로 외로이 서 있던 한용운 님을 놔두고 우리는 또 방랑길을 떠났어. 태풍 예보가 있어 영동으로. 00별 여행 펜션의 도움을 받기로 했거든.


아~ 근데 이눔의 영동을 어떻게 가야하는 거야~ 가도가도 끝없이 이어진 도로. 걸어도 걸어도 지나다니는 차량조차 별로 없으니 이거야 원~

우린 마치 조각배가 되어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것 같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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