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분의 축제장 화가
굵어진 빗줄기로 펜션 부지 바로 옆을 흐르는 남대천 강물도 꽤 불어나있었지. 우리는 강물과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숙소에 머물고 있었거든. 모두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강물을 바라봤는데 축대가 경계인 도로와 강물의 높이가 채 1미터 정도 밖에 안되더라구. 경찰은 사장님과 우리에게, 사장님은 우리에게 대피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걱정스러워했지. 시시각각 불어나며 언제 도로를 덮칠지 모르는 강물을 뚫고 대피한다는 것도 문제였어. 그래 우리는 그곳에 남아있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숙소에서 잠을 청했지.
우리 부부,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두루 겪어서인지 잠만 잘 오더라구. 헌데 문제는 우리 여행의 원칙, 한곳에서 두번 자지 않는다는 룰을 깨뜨린 거였어. 비록 태풍 때문이긴 하지만. 그래 우리는 그곳에서의 3박 4일 째의 어두운 꼭두새벽에 일어났지. 그리고 행장을 꾸려 살금살금 그곳을 떴어. 새벽 안개비 맞으며.
어슴푸레 날 밝아오는 길을 따라 걸어나오며 돌아봤더니 금방 도로를 덮칠 것 같이 호기를 부리던 강물은 밤 사이 유순한 시골 처녀의 치마폭 같이 유순해져 있드라구. 나는 펜션을 뒤돌아보며 사장님 내외분께 오래오래 행복하시라고, 감사했노라고, 고개 숙였지. 아무 조건 없이 타인에게 그런 친절 베풀기가 쉽지 않거든.
버스로 무주 도착, 금산행 히치 시도. 이곳에선 절대 차 못 잡는다며 백번은 더 말해주셨을 어느분께 천원을 얻어들고 금산 인삼 축제장에 다다라보니 연주 할 곳이 없는 거야. 곳곳에 앰프가 가동되어 고막이 터질 것 같아서. 때 마침 안내소에 계시던 연세 지긋하신 분이 어디로 가면 무료 급식을 하니 거기서 점심 먹으라고 일러주시드라구. 그곳에 갔더니 길고 긴 대열이 쭉 뻗어 있었지. 점심 먹으려고 온 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근데 거기서도 은근슬쩍 끼어들기 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더라구. 우리는 밀리고 밀리다 밥이 떨어졌다는 통보를 받았어. 그래도 다들 그 자리를 뜨지 않더라구. 어딘가에 밥 가지러 갔다고.
우헤헤~ 밥 한끼 얻어 먹는 것이 그렇게 수고로울 줄 다들 모를 거여~ 끼어들기에 밀리고 밀리다 끝끝내 한그릇 얻어묵고 숙소 찾아 나섰다가 디지게 걷기만 하다가 다시 축제장으로 회귀. 축제 끝나면 기습적으로 텐트치고 자자며.
두어 시간을 인삼 연구소 어느 원두막에서 개기다 축제장으로 내려오니 부스 곳곳은 이미 문 닫았고 여기저기 불이 켜지드라구. 근데 그 불빛 아래 유독 내 눈길을 끄는 두사람이 있었지. 축제장에서 유일하게 봤던 거리의 화가들. 우리들 나이 또래의. 즉석 인물화를 그려주시던. 같은 일행이 아니면서도 나란히 앉아 계시던.
낮에도 그분들을 봤었거든. 그때까지도 손님 한번 못 받은 것 같았지.
나는 웬지 그분들이 짠해지드라구. 느낌에 배도 쫄쫄 굶고 계신 것 같아서. 그래 나는 말없이 내 각설이통을 꺼내들고 식당가로 향했어. 그리곤 번화 식당 야외 탁자에 앉아 음식 시켜놓은 손님들에게로 다가가 음식 조금만 나눠줄 수 없겠느냐 여쭸어. 두어번 거절당하다 어느 부인이 낀 일행이, 시켜놓은 음식 절반을 선뜻 덜어주는 통에 희색이 만면해서 돌아왔지. 그리곤 그 화가분들께 드렸어. 얼렁 잡숫고 하시라고.
한분은 냉큼 받으시는거야. 내가 집 떠날 때 꼼쳐가지고 갔던 판촉용 미니 소주 한병도 드렸더니 얼른 받아 호주머니에 챙기시며.
예술가는 가난하다~ 라는 말이 절절이 다가오더라구. 물론 드물게는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지만~
예술 세계의 필요악,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글쟁이, 그림쟁이, 춤쟁이는 아마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 자기 색깔을 집어던지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한~
나 역시 마찬가지잖아~ 히히히~ 욕지거리, 껄쭉한 말도 곧잘 하잖아~ 된장 냄새 폴폴 풍기며~
직접 보고 듣고 겪어야만 글도 쓰고. 나는 촌년 스타일~~ 히히힝~
그러니, 어찌 예술쟁이들이 가난하지 않겠느냐고~
여차저차 그곳에서 하룻밤 머물고 새벽 5시도 못 되어 기상, 행장을 꾸렸지. 느긋이 잘만한 상황이 못 되더라구. 축제장이라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부터 움직여서.
아침 일찍 금산 중도 오거리에서 역주행하는 차들을 여러번 목격하다 히치에 성공,
대전에 들어섰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