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환자나 보호자들이 원하더라도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어려웠다. 가령 식물인간이 된 상태에서도 인공호흡기를 계속 사용하며 생명을 연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만연했었다. 이제는 환자가 임종기라고 판단되고 더 이상의 치료가 의미 없다고 판단되면, 환자의 가족들이 의사와 상의하에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에크모, 승압제를 중단 가능한 연명치료로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생명을 유지시키는 기계들과 약품들을 중단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도, 의료진들에게도 어려운 결정이다. 어떤 치료는 유지하고, 또 어떤 치료는 중단할지를 결정하라니…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하면 좋을지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부터 나는 어떠한 환자들이 중환자실에 들어오더라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 놓았는지를 환자 본인이나 가족들에게 물어본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본인이 건강할 때 등록 기관에 방문해 상담사와 상의한 후 작성하는 문서로, 임종 상황이 되었을 때 연명의료 중단과 호스피스 이용에 대한 의사를 미리 기록해 놓는 것이다. 만약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작성되어 있다면, 중환자실에서 의미 없는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판단에 도움이 된다. 환자의 가족들을 설득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평소에 작성해 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까? 준비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중환자실에 입실했다면 말이다. 이때는 ‘연명의료계획서’라는 문서를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작성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의식이 있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면 본인이 직접 작성하고 서명하게 된다. 하지만 중증 질환이나 치매 같은 뇌질환 등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가족들이 환자의 대리인으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할 수 있다.
때로는 부모님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지만, 자녀들이 몰랐던 경우도 있다. 본인은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사전에 작성해 놓았지만, 가족들이 그 사실을 듣지 못한 경우이다. 이런 경우에는 환자의 평소 뜻을 따라야겠지만, 가족들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가끔 발생한다. 가족들이 아직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거나, 임종에 대해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경우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가족들과 대화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족들의 뜻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지 못하고 유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서 가족들이 결국 환자의 뜻을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게 되지만 말이다.
아직까지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모르는 환자(그리고 그 가족들)가 많다. 그만큼 스스로 임종의 과정을 주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분위기가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 임종의 과정을 묻는 것이 실례가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일했던 미국의 병원에서는 모든 환자가 입원할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advanced directives)를 작성했다. 입원 생활에 대해 설명할 때, 해당 환자가 심폐소생술을 원하지 않는지(DNR: Do Not Resuscitate), 그리고 기도삽관과 인공호흡기를 원하지 않는지(DNI: Do Not Intubate)를 물어보았다. 만약 어떠한 경우에도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 환자의 의견이 반드시 지켜질 수 있도록 환자에게 보라색 팔찌를 채워주었다(그림 1). 심정지가 갑자기 발생해 의무기록을 확인할 시간조차 없을 때, 실수로라도 심폐소생술이 시행되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병원이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지켜주려는 노력으로 나에게 느껴졌다.
나는 많은 중환자실에서 많은 죽음을 본다. 그래서 삶의 시간은 유한한 것임을 매번 깨닫게 된다.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정 나이가 들면 본인이 그리는 임종의 과정을 가족들과 이야기해 보고 계획해 놓는 것이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