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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보석 쇼핑 옷차림

새 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처럼.

by 은림

보석친구 R님 : 예전부터 좀 궁금한 점이라 여쭤봐요.

집 앞 아니고선 좀 큰 백화점 명품 매장 갈 때는 그 브랜드로 풀 장착 한다거나,

그 브랜드는 아니어도 구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옷, 시계, 명품 액세서리 같은 아이템을 풀장 착하고 가시는 분들 많잖아요.


셀러가 위아래로 훑어본다는 느낌이 든다는 글도 많고, 내가 리셀러가 아니고 너희 브랜드를 애정하고 있으니 나한테 가방을 팔아달라는 시그널을 준달까요. (그래서 백화점 갈 때만 풀장 착한 것 같아요. 백화점에 가기 위해 쇼핑을 한달까...)


1. 보석 가게 단골집 말고 처음 가는 샵에는 어떤 차림으로 가시나요? 명품백 들고 갈지, 알 큰 천연 보석 착용할지, 뭐 그런 거요.


2. 백화점 갈 때는 치안 걱정이 없는데, 종로 골목골목 누비다 보면 인적이 드문 곳도 있어서 풀 장착하고 다니기엔 뭔가 좀 마음이 편안하지 않아서 약간 그지꼴로 다니는데 유색 보석 보러 다닐 때 구매력을 표현해야 친절한 지도 조금 궁금해요. 유색 보석 큰 건 없는데 액세서리나 가방에라도 힘주고 가야 하는 분위기인지요




어느 날 카페에 올라온 고민글이다. 같이 고민한 친구들이 엄청 많았고, 벌써 10여 년을 종로에 드나든 나도 여전히 이 고민을 안고 있었다.


개인 샾의 유색 보석 주얼리와 백화점/주얼리 브랜드의 차이는 가격표시 유무다. 브랜드는 검색력에 따라, 세일 기간에 따른 가격 차이는 있지만 정찰제이고 종로나 금은방은 가격이 표시된 곳이 거의 없이 그때그때 금/다이아/보석시세에 따라 바뀐다. 달러차이도 바로 반영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가격을 알면서 구경하는 것과 모르는 채로 구경하는 건 부담이 크고, 신뢰하기도 다소 어렵다. 손님을 보고 따라 가격을 다르게 부르는 것은 옛날 방식 (물건이 귀하고 필요한 사람은 많은 시절)인데 오래된 개인 귀금속 가게들은 아직 그런 옛 관습들이 많이 남아 있다. (마수걸이라던가.)


마수걸이는 보석 친구 k님이 들려준 이야기인데 첫 달, 한주의 첫 손님등 처음 맞이하는 손님을 말하며 구입하는 손님이 아니라 수리나 구경만 하고 가는 손님이 들어오면 재수가 없다는 속설이다. 생각해 보니 주얼리 수업을 들을 때 종로 사람들이 바쁜 요일을 피해 가면 천천히 더 잘 보고 물어볼 수 있다고 배웠는데 도매상과 소매상, 그리고 수리공방의 바쁜 날이 다 달라서 기억이 섞여 버렸다;;


브랜드 주얼리는 금의 함량이나 표시가 분명한 반면 귀금속 거리의 옛날 물건들은 각인이 히미 하거나 아예 없는 것도 있다.(금 사기의 추억에서 나도 그런 제품을 구입했고 하나는 각인을 받아왔으나 하나는 받지 못했다)

마케팅의 문제도 있다. 브랜드는 제품을 잘 알리고 팔려고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마케팅 비용과 브랜딩 비용을 제품가에 반영한다. 중소가게들은 효과가 모호한 마케팅비를 쓰고 제품가를 올리기보다는 구입 의사가 분명한 소비자를 직접 만나서 조금 더 저렴하게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을 택했다.


보석을 구입하면서 다른 제품과 차이를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는데 일반 제품은 소비자가 갑으로 제품을 선택한다면 보석은 갑을이 약간 모호하다. (특정 보석이 탐이 났다면 당신이 을이다! 사랑에 빠진 자는 무조건 을이다.)

일단, 보석 판매자는 구매자를 본다. 아래위로 차림새를 훑어본다거나 금전으로 환산하기보다는 당신을 분명히 기억한다. 귀중품을 취급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경계가 몸에 밴 것일 수도 있고, 보석에 걸맞은 사람인지, 귀한 것을 건네주며 소중히 아껴줄 사람인지도 살펴보는 거 같다.(귀금속과 보석을 살 때는 돈만 치르는 게 아니라 물건의 주인으로서도 평가받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보석친구 R님 이 말씀하실 -리셀러 아니고요!-에 들어갈 이야기였을까?)


누가 쓸 건지, 어디에 쓸 건지 용도도 상세히 묻는 편이다. 알맞은 제품을 추천하기 위해서 일수도 있고 도매와 소매를 구분하기 위해서 일 수도 있다.

전에는 나이가 어려서 충분히 고민하고 뭐든 여쭤보고 그냥 나와도 어리려니 학생이려니 봐주는 기색이 있었지만 이제 들어가면 업자인지 확인하고, 뭐든 사서 나오지 않으면 부끄러울 나이가 되었다. 질문자님은 착장을 고민하셨지만 이 글을 쓰면서 갑자기 나이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통찰이 들었다.(늙어 보이시란 뜻 아니고요 ㅎㅎㅎㅎ)


백화점이나 브랜드는 마음에 든 제품을 눈여겨봐 두었다가 매장에 가서 시착해보고 어울리는지 마지막 확인만 하면 구매가 결정된다. 하지만 보석은 가게에 들어가면서부터 제품 만들기가 시작된다. 합성인지 천연인지 크기와 무게부터 금의 함량과 중량까지 전부 소비자와 판매자가 협의하고 체크하면서 구입해야 한다. 기성품으로 색과 크기를 똑같이 만드는 스와로브스키나 큐빅과는 달리 천연 보석은 같은 돌이라도 미세하게 차이가 있어서 제 짝을 맞추는 데도 시간과 감각이 필요하다.


브랜드 제품들이 이미지 마케팅과 공장 제조로 사람을 지우고 환상을 구축한 반면, 개인 샾들은 보석의 개성과 판매자의 얼굴이 바로 드러난다. 소비자는 보석의 전체 퀄리티와 가격, 보석상의 인상으로 본능적인 신뢰를 판단한다.


종로 깊은 골목의 전설처럼 오래된 보석상들은 디퓨전 사파이어를 높은 가격에 판매하고, 랩사파를 천연이라고 속이기도 한다. 판매자도 원석상에게 속아 구입한 경우도 있다. 그랬으리라고 믿는다. 너무 나이 들고 세속의 때가 묻은 판매자는 피하는 편이다. 새로운 시장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았거나, 세밀한 보석의 모습을 살펴보고 정확한 가치를 평가하는 보석 여행의 안내자를 맡기에는 좀 부족하다고 느낀다. (이미 나부터도 정확한 숫자를 확인하는 손끝이 느려지면서 전면에서 좀 물러나게 되었다.)




집에서 살림이나 하며 알뜰이 모은 돈으로 금반지나 예쁜 보석반지하나 장만하고 싶어서 기웃대는 모습이 파는 사람들에겐 어떻게 보일까. 내심 염려가 되어 가진 중 좋은 것으로 스카프 하나 다이아 결혼반지라도 기를 쓰고 끼고 가본다.


뭐, 이건 가게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마음이 졌다.


마음에 든 보석이나 반지를 꺼내달래 볼 용기도 사라진다. 가격을 들으면 어후. 이걸 어쩐다. 사지도 내려놓지도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추스르고 나오기가 버겁고 집에 와서는 한참을 속상해한다. 보석을 사 오지 못한 거보다 그 감정이 굉장히 불편해서 종로에 가지 않기도 했다. 내가 드나들 곳이 아니라는 느낌.


분명 나보다 더 부자일 사장님 들 앞에서는 기도 살짝 죽고 진열된 번쩍번쩍한 금덩어리에는 정신이 살짝 혼미하고, 세팅된 돌들이 다이아가 아닌 큐빅이라서 전에는 진짜 다이아를 구경하지 못해서 실망했지만 이젠 오히려 약간 안도감이 든다. ㅎㅎ 소시민이 알면 알수록 귀금속의 벽은 높아져갔다.


주얼리가 너무 마음에 드는데 가격이 커버가 안되면 해외와 중국 판매 사이트를 몇 날 몇 달을 찾아 기어이 비슷한 걸 사서 써보기도 했다. 역시 마음이 허전했다. 사랑에 빠진 당신이 아니면, 다른 사람이 아무리 더 잘나고 닮았어도 나에게 당신이 아닌 것처럼. 나는 그저 사랑의 열기가 나를 지나쳐가고 스러져 가기만을 속절없이 앓으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천연 보석과 세팅은 모두 자연에서 인간이 빚어온 거다. 비슷한 것은 없다. 공장제 브랜드 제품도 미세하게 퀄리티가 다르다. 똑같은 옷을 여러 벌 꺼내 바느질을 전부 확인해서 하나만 골라 사가는 손님도 보았다. 그릇의 경우도 안료와 구웠을 때의 날씨와 시간 온도차가 미세하게 다르다. 그래서 맘에 들었다면 새것을 달라거나 새로 제작하지 않고 샘플로 나온 걸 그냥 바로 가져와버리기도 한다. 물론 공장제 제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거나, 원하는 브랜드이기만 하면 아무 상관없다는 친구들도 있다. 각자의 취향과 타협점이 달랐다.




보석을 사는 과정은 호기심이건 모험이건 사치건 탐미건, 목적이 어떻든 '과정은 즐거워야 한다.'

과정이 즐겁지 않았다면 과감하게 그 구매는 중단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보석을 볼 때마다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석은 소모품이 아니므로 아주 오래 사용한다.

좋은 날 보석을 사면, 냉정함이 떨어져서 과용할 수도 있지만, 즐겁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희귀석이라 탐구하고 싶다거나, 가격이 너무 좋았다면 벌충될 수도 있다.)




앞으로 돌아가서,

보석친구 R님의 질문에는 아주 많은 회원님들이 정성스럽게 경험담이나 충고를 적어 주셨다.


1-1. 원석을 구입하러 종로 도소매상에 갈 경우. 어떤 옷차림이 좋을까요?

흰옷(보석에 옷 색이나 피부색이 묻는다), 편안한 차림. 가벼운 신발(종로 골목은 길이 오래되어 평탄하지 않다). 본인이 찾는 보석의 종류, 크기, 커팅, 색상, 예산을 바로 말하는 편이 좋다. 서로 시간도 절약하고 최대한 맞는 걸로 찾아주신다. (대부분 찾던 거보다 더 좋고 비싼 것을 사들고 나오게 되지만, 당신만 그런 건 아니다.)


농담으로 보석을 저렴하게 사고 싶다면 추레하게 청바지 차림에 때 낀 손톱으로 업자가 공방에서 일하다 말고 나온 것처럼 사러가라던 학원 동기도 있었다. 사업자는 보석을 도매가에 살 수 있다. 재고처리가 급한 오래 묵은 돌들은 재빨리 조건과 가격을 타협할 수 있다면 일반인도 약간 저렴하게 득템 할 수 있다. 종종 미끼상품으로 따로 코너를 만든 가게도 있다.


1-2 백화점처럼 풀 착장을 하면 더 친절할까요?

보석 나석이 아닌 바로 착용할 주얼리의 경우, 가벼운 외출복 기본 나들이 차림이 좋다.

아무래도 옷차림과 보석이 너무 어긋나면 뭐가 어울리는지 제대로 고르기가 어렵다. 물론 수집용이라면 상관없다.

작은 가게들은 대부분 친절한 편이다. 다만, 원하는 돌을 확실히 해서 시간을 너무 많이 뺐지는 않는 게 좋다.



2-1 귀중품을 갖고 다녀도 되나요?

종로 뒷골목은 상가들이 열려 있다면, 안전하다. 모든 골목에 CCTV가 있다. 거기 다니는 허름한 옷차림 모두 귀금속업 종사자들이고 금이나 보석을 나르고 있다. 종로 길에서 반지나 보석을 잃어버린다면 대부분 찾을 수 있다. 그런 일을 대행해 주는 업체가 있다고 한다(이용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항상 법보다는 주먹이 가깝고 사고가 나면 후처리가 귀찮으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2-2 지나친 착장은 '어이 호구 왔는가~'(역시 K님의 표현)가 될 수 있다.

귀금속은 정찰제가 아니다. 마진을 적게 잡는 만큼 그날그날의 금시세, 달러, 보석시세 가격이 반영되어 즉석에서 달라지기도 한다. 대부분 가격표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다. 귀보석의 경우 주인이 부르는 게 값이다. 캐럿당의 평균가가 있으니 충분히 조사해서 예산을 세우고 방문하면 좋다.




아래는 종로를 직접 다녀본 여담이다.



1) 나만의 마스터 스톤을 끼고 가면 좋다.

그게 다이아건 루비건 사파이어건 큐빅이건 상관없다, 최대한 내가 원하는 모습과 닮았거나, 전혀 다르더라도 좋은 것을 끼고 가서 그보다 맑기나 색이 못한 것 나를 빛내줄 것이 아니라면 구입하지 않는 편이 좋다.


2) 친절과 서비스를 원한다면 인터넷에서 유명하고 가격대가 있는 웨딩 브랜드와 백화점에 갈 것을 추천한다. 어느 쪽이든 발품 파는 것보다는 비싼 편이다.

친절은 서비스고 서비스는 곧 비용이다. 친절=돈이다. 특히 종로에 흐르는 시간은 금인 거 같다. 그곳을 걷다 보면 정말 피부로 그런 것들이 느껴진다. 가게들은 분초를 다투어 세일즈링을 한다 이번 손님에게 못 팔았다면 빨리 다음 손님을 만나 팔아야 한다.


3) 판매자는 주로 두 가지 방식을 취한다.

손님의 차림새나 보석을 칭찬 후, 우리 보석이 더 좋아요 짠~~ 보여주신다 (난 이게 더 좋다)

손님이 가진 보석을 잘 못 샀다고 후려친 후, 다른 보석을 보여준다. (일단, 내 새끼 밉다 하면 기분이가 나뿌다) 둘 다 일반적인 멘트이니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보석 판매자들의 퍼포먼스도 다양하다. 일단 가게가 어둡고 조명이 많다면, 보석의 색을 확인하기 어렵고 몹시 빛나 보이는 환경이니 조심하라. 많은 다이아몬드 전문 매장은 내부 인테리어가 어둡고 조명이 화려하다. 보석의 색이나 세심한 세팅의 형태를 알기 어렵고 빛반사를 극대화한 환경이다.


가능한 평범한 밝은 인테리어, 창이 많고 조명이 적거나 일반등이 많은 곳이 보석의 색을 정확히 알기 좋다.

여러 가지 퍼포먼스 (레이저 포인터로 큐렛을 쏴서 휘광 연출로 빛이 더 많이 퍼지는 보석을 고르기도 한다. 검증되지 않았다.) 듣보잡 해외 감정서는 아주 조심하기 바란다. (일본 감정서에 핑크라고 쓰여있는 화이트 다이아몬드를 보여준 곳도 있었다. 가격도, 모습도, 판매자의 코멘트도 퓨어 화이트였다. 신뢰하기 어려운 감정서가 판매자의 뒤에 잔뜩 쌓여있었다.) 물론 그런 다채롭고 신기한 재미들이 보석을 만나는 즐거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적당한 환경에서 마음에 드는 보석을 골랐다면 살짝 테이블 밑 어두운 곳에 넣어도 빛이 죽지 않는지 확인하고 판매자의 양해를 구해 일광이나 일광그늘에서 보기 바란다.



5) 보석을 파는 것은 사람이다. 판매자를 잘 살펴보라.

보석 시장에는 장사치도 있고, 보석을 좋아해서 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석 보는 눈을 기르고 믿을 만한 판매자를 찾아내고, 그 판매자가 적당한 돌을 찾아 올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다.


앞서 말했지만, 돌은 석연石이다. 안목과 금전과 돌이 만나야 한다. 좋은 판매자는 결혼 중매인과 다름없다.

보석의 주 소비자는 여성이다.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도 많지만 소심하고 자기 목소리 내는 걸 주저하는 여성도 많다. 사회생활을 해도 집안일에 갇혀서 동네 바깥을 오래 벗어나지 못하면, 금세 소심해지고 주눅 들고 낯선 길에서 움츠러든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는 일단, 그 동네에서 커피든 뭐든 가벼운 걸 사 먹고 탑골공원이든 벤치든 앉아서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내가 그 거리에 녹아드는데 시간이 필요한 거뿐이다. 거리의 공기가 나에게 충분히 물들면 그때 움직여도 된다.


마음에 드는 보석을 찾아냈다면,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 구매를 결정하기 바란다. 보석을 고르는 것은 사치스럽고 즐거운 여행이다. 급할 것은 아무것도 없고 즐거운 시간은길 수록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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