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오늘 낮엔 케이크를 갖고 그 애와 헤어진 장소에 갔었다. 낮의 숲은 얌전하고 어딘지 모르게 허전했다. 밤의 흥분과 위협, 광란에 찬 포효는 나무껍질 밑이나 덤불 속에 던져 놓고 멍청하게 졸고 있는 맹수처럼. 나는 버석 마른 바위에 주저앉아 휴대용 종이 아이스박스의 케이크가 녹아 버릴 때까지-케이크는 끝까지 녹지 않았다- 그 애를 기다렸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저녁엔 연희와 있어야 하므로 저택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우리의 생체반응 거리가 50센티 이하가 아니라면 <돔>의 잔소리 로봇이 객쩍은 소리를 하러 올 테니 말이다. 연희와 나는 그 이후로는 짝짓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내가 도무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차라리 아침에 샤워와 함께 배출하는 편이 훨씬 기분이 깔끔했다.
“자요?”
간신히 청한 잠에 들려는데 어둠 속에서 연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낮게 ‘끙’ 소리를 내고 스탠드 등을 켰다.
“깼습니다. 얘기하세요.”
연희는 잘강거리는 술잔을 들고 내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내 잔도 있었다. 내가 이미 마셨다고 하자 연희는 ‘흐음…’하는 그녀 특유의 모호한 콧소리를 내고 가까운 탁자에 잔을 내려놓았다.
“저번에 그 얘기 말예요. 아무도 죽지 않는데 왜 새로운 인간이 필요하냐는 거…”
나는 잠자코 그녀의 말이 이어지길 기다렸다.
“그거 역으로 생각하니까 무척 간단해지던데요? 물론, 당신이 바란 게 이런 종류의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계속하라고 손짓했다.
“오리지널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디인지 생각해봐요.”
“사회죠.”
“당신 바보예요? 물론 오리지널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선전하는 건 사회죠. 각 분야에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면서요.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건 당신도 나도 알죠. 우리 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그걸 포기했어요. 그런 척만 하고 있을 뿐이죠. 아니면 사람들이 지독히 혼란스러워할 테니까. 아무도 그런 건 원하지 않죠.”
“그럼 대체…”
“유전자 돔이예요.”
갑자기 세게 얻어맞은 듯 머리가 띵했다. 당연히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실은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던 거였다.
“새로운 오리지널은 새로운 외부 자극에 대한 자연 항체를 갖고 있죠. 재생체랑 다른 점은 그거 하나에요. 우리는 재생시 마다 그걸 옵션으로 첨부하죠. 그런데, 과연 그 옵션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나는 그런 말을 눈 하나 깜짝 않고 하는 그녀가 두려워졌다.
“이건 아까 낮에 말하던 건데요. 플랜만이 포식자가 아녜요. 오리지널을 먹고 있는 건 우리예요. 그들은 우리 먹이가 되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 거라구요.”
“너무, 극단적인 생각 아닙니까?”
“글쎄요.”
연희는 두툼한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의 무게를 제대로 모르는 거 같았다.
등에 진땀이 흘렀다. 나는, 굉장히 훌륭하게 살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부당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긍지를 갖고 살아왔다. 그런데 세상에 존재하는 자체로 내 모든 것이 이미 죄악 덩어리였다. 어떻게 내가 플랜을 식인귀라고 욕할 수 있었을까? 나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는데.
“창? 괜찮아요?”
“…연희씨는 괜찮습니까?”
“뭐가요?”
“그런 생각을 하고도 기분 안 나빠집니까?”
“좀, 나쁘기야 하죠.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요. 난 살아 있고, 계속 살 생각이니까.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잖아요. 그리고 어차피 아무도 정말로 죽지 않잖아요. 좋은 게 좋은 거죠.”
연희의 말은 옳았다. 그럼에도 나는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는 겁니까?”
연희는 코웃음 쳤다.
“그럼 죽을래요? 당신도 죽고 싶지 않으니까, 재생할 돈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위험한 직업을 선택한 거잖아요.”
나는 연희에게 플랜 헌터를 택한 모순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곤란해할 거 없어요, 창. 누구나 살고 싶어요. 지금 가진 걸 하나도 잃지 않고, 더더욱 많은 부와, 명성과, 육체적 쾌락과 정신적인 환희를 맛보며. 어떤 시대에도 이런 일이 가능했던 적은 없어요. 우린 지금 산 채로 신의 영역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연희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그건 어떤 깨달음-그것이 어떤 종류 건 간에-에 닿은 종류의 사람에게서 나는 빛이었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오리지널을 만들지 않을래요? 정부에선 내가 짝짓기를 해내지 못하면 내 활동 범위를 제한하겠대요. 그건 나한테 굶어 죽으란 소리죠. 그거 알아요? 최근 오십 년 간 한 명도 태어나지 않았다는 거. 당신이랑 나랑 오리지널을 만들면 <돔>에서 꽤나 반가워할 거예요. 나도 당신도 다른 때보다 더 많은 특혜를 받을 거라구요.”
그녀의 혀는 뜨거웠고, 부벼 오는 가슴은 천근처럼 무거웠다. 나는 거칠게 움켜쥐는 손길에 숨을 삼켰다.
“아니야, 이건 아닙니다….”
“잘난 척 하지 말아요. 우린 모두 공범이예요.”
나는 연희를 뿌리쳤다. 연희는 붙잡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차갑게 벼려진 말을 던졌다.
“그렇게 혼자 순결한 척 할 거면 차라리 죽어 버려요. 그게 제일 깨끗할 테니까.”
연희의 마지막 말은 내 속을 너무 깊게 찔러서 피를 흘릴 틈도 없이 숨부터 막혔다. 어느새 나는 공중전화에 매달려 강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창?>
“깨워서 미안합니다, 강. 하지만…”
꼴불견이란 걸 알지만 울먹임이 새어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강, 우리는 왜 사는 겁니까? 미래를 잡아먹어 가면서까지 여기 살아 있는 이유가 뭐죠?”
<창, 진정해. 자넨 단순한 주제에 너무 진지하다니까. 잠깐만, 내가 물 한 잔 마실 틈은 주겠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잠시 화면이 영화처럼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잠깐 사이에 강은 한결 산뜻해진 얼굴이었다.
<무슨 생각이 든 거야, 이 밤중에?>
나는 연희와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강은 가끔 고개를 끄덕이고, 가끔은 가로젓고, 또 여러 번 한숨을 쉬며 끝까지 들었다.
<옳은 말이야. 플랜은 현재를 먹고 있지만 우리는 미래를 먹고 있어. 현재의 욕망을 위해 미래를 집어삼킨다! 인류는 정말 대단한 탐식가지. 결과는 자명해.>
“어떻게, 그렇게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겁니까? 여자들은 다 그런 건가요? 아무런 죄책감이나 두려움 같은 거 안 듭니까?”
<우린 다만 냉정할 뿐이지. 이건 여자 남자 문제가 아니라 자네가 너무 섬세한 거야, 창. 자네, 왜 인간이 살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 봤나?>
“욕망이죠. 더 많은 돈, 명예, 쾌락… 그런 끔찍한 탐욕들, 그리고 죽음에 관한 공포. 더 뭐 있습니까? 희생, 박애? 얼어 죽으라고 하십쇼.”
강은 쓰게 웃었다.
<그래, 모두 옳아. 하지만 내 생각에 그런 욕망들은 모두 빌미가 아닌가 싶어. 그런 것들은 인간이 사는 목적이 아니야. 단지, 우리가 삶을 이어가도록 만드는 유도체에 불과해. 우리가 자살하지 않도록.>
“그건, 누군가 우리가 계속 삶을 갈구하기를 원하고 있다는 겁니까?”
입안이 바싹 말랐다.
<내 생각은 그래. 미완이 들으면 상상병에 노인성 정신착란 증상이라고 하겠지만, 끝까지 말하자면, 창 아마 우린 각자 따로 떼어놓으면 별로 효용이 없을 거야. 그러니까 늘 일정한 수준의 개체수를 유지하도록-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그런 삶에 관한 욕망들이 가미되어 있던 거지. 그런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인구는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어. 아무도 죽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살아 있는 건 아니거든. 발전할 수 없다면 퇴보뿐 그 가운데는 없다고. 그리고 플랜이 등장했지.>
나는 강이 하는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에겐 너무 복잡했고 충격적이었다.
“강, 난 총이나 쏘고 플랜이나 때려잡으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강은 혀를 찼다.
<아니, 자네는 그냥 문제에서 도피하고 싶을 뿐이야. 생각해 봐. 웬일인지 정자는 점점 허약해졌고 난자도 약해졌지. 자궁은 너무나 불안정해. 세계 각지에 불임이 팽배하지. 사람이 줄어드니 상대적으로 환경은 낙후되기 시작했어. 쓸모 있는 땅이나 경작시설이 아무리 잘 되 있어도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까. 벌써 오래전 일이지. <돔>은 지독히 세련됐지만 그건 지극히 일부일 뿐이야. 전 세계가 퇴보하고 있다구.
인구가 줄면 없어지리라 예상했던 기아도 여전히 강력해. 먹을 사람도 줄었지만 일할 사람도 똑같이 줄었기 때문이야. <돔> 안에선 일거리가 없다고 난리지만 <돔>만 나가면 그런 일 투성이라고. 인류는 그렇게 종의 마지막을 향해 걷고 있어. 지금 오리지널 어쩌고 하는 건 내 눈엔 어리석은 발악으로 보여.>
“왜… 왜 그렇게 된 겁니까?”
나는 흥분과 충격으로 어깨를 들먹이고 있었다. 원치 않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제길, 자기 전에 술을 마신 탓이다. 그래, 그 탓이야.
<잘 들어봐 창. 우리는 갯벌 같은 거야. 우주에서 보면, 우리는 모래알만큼 작다고 하지 않던가? 아마 그게 잔뜩 있으면 다양한 생물이 살도록, 순환의 한 고리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을 테지. 그런데 개체 수가 점점 줄어들어 효용성이 떨어지니까 낡은 고리 대신에 새로운 대체물이 등장한 거야. 그렇게 되는 거지. 과거부터 그래 왔듯이.>
“대체 누가 우리를 개체로 정의하며 효용성을 따지는 겁니까? 신? 우주? 그런 게 존재하는 거였습니까?”
<그건 나도 장담할 수 없어. 하지만 모든 것들이 연결 고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 순환 그 자체가 우주인 거야.>
그때 나는 낮은 허밍 소리를 들었다. 극도로 몰려 있는 내 신경을 부드럽게 다독이는 투명하고 엷은 음색이었다. 나는 수화기를 떨어트리고 그리로 달려갔다. 뒤에서 강의 목소리가 내 발목에 걸렸다가 힘없이 스러졌다.
<창? 창? 듣고 있어? 어딜 가는 거야 갑자기? 창!>
나는 그게 강과의 마지막 통화가 되리란 걸 몰랐다. 그때 내 머릿속엔 온통 그 애 생각뿐이었다. 작고 투명한 사랑스런 손가락, 아직 세상 어떤 더러움도 모르는 순결한 미소, 웃음소리, 지친 마음을 위로하는 나직한 노래… 사생아라도 좋다. 그 애가 무엇이라도 좋았다. 지금 그 작은 몸을 내 몸으로 품을 수 있다면.
나는 엿가락처럼 늘어진 시간의 선로에서 머뭇거리던 열차가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한 걸 느꼈다. 내 심장이 놈의 엔진이었다. 열차는 그 애를 찾아 달렸고, 창 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을 가늠할 틈도 없이 목적지에 다다라 있었다.
“안녕?”
나는 어색하게 인사하고 그게 멋쩍다고 느낄 틈도 없이 작은 팔 안에 안겼다. 그 애는 내 어깨에 달라붙어 조그만 손으로 내 머리를 감쌌다. 숲의, 태고의, 그 오래고 신비로운 향이 가슴으로 스며들며 날뛰는 숨을 안정시켰다. 어떻게, 그 애가 있는 곳을 찾아냈는지 모른다. 어떻게 그 애가 나를 찾아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그 애의 향기를 가슴 깊이 빨아들이는 것만으로 천국에 다다른 기분이었다.
그 애는 천천히 나에게 입을 맞췄다. 그 애의 입술은 체리 셔벗보다도 달고 부드럽고 시원했다. 내 몸을 더듬어 확인하는 손가락들도 싫지 않았다. 이미 단단히 발기된 내 성기는 어떤 거리낌도 죄책감도 없이 그 애를 원하고 있었다. 그 애는 내 몸에 달라붙은 채로 천천히 너무나 자연스럽게 나를, 내 모든 것의 원자의 뿌리까지 받아들였다. 나는 나른한 충족감에 휩싸여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이 바로 지금의 상황이다. 술이 깬 후 감각이 더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몽환향에서 깨자 모골이 송연했다. 시야는 뭔가에 붙들린 채 고정되어 있었지만 주변에 울리는 처덕 소리와 기이하게 움직이는 덩굴의 사각거림이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지금 플랜의 손아귀에 놓여 있었다. 꼼짝도 할 수 없이.
“이런.”
내 눈앞의 천진한 얼굴은 그대로였다. 나는 녀석의 낮은 허밍 소리를 들었다. 플랜이 노래한다는 건 본적도 들은 적도 없다. 놈들의 성대는 그만큼 발달되어 있지 않았다. 웃음소리도 목과 머리의 연결점인 연수부분-인간으로 설명하자면-의 개공구에서 간신히 나오는 거였다. 게다가 분명히 녀석에겐 다리가 있었다!
[안녕. 창. 당신이. 내게. 준다고. 했어요.]
그 애의 뺨이 내 뺨에 닿았다. 몽환향이 덜 깬 걸까? 나는 마치 그녀의 노래가 사람 말소리처럼 들렸다. 발음도 부정확하고, 어떤 말을 사용하는지도 구분할 수 없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만은 뚜렷했다.
[안녕. 창. 당신이. 내게. 준다고. 했어요.]
“무슨 소리야?”
[안녕. 창. 당신이. 내게. 준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애는 내 귀에 키스하고 천천히 물어뜯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그 애는 제 입과 배를 가리키고 나를 가리켰었다. 그건 케이크에 대한 것이 아니었던 거다.
“아니…야…….”
나는 그 애의 얼굴이 천천히 아주 낯익은 형태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죽기 직전의 환영처럼 강이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푸근한 입매와 밤샘 덕에 까칠해진 피부, 왼쪽으로 고개를 살짝 기울이는 버릇, 모든 것이 강 그대로였다. 그러나 어딘가가 어색했다. 눈이었다. 무지개 빛으로 난반사되는 눈동자, 그건 강의 연구실에 있는 플랜의 눈이었다. 순간 환영은 최고의 악몽으로 탈바꿈했다. 강의 얼굴과 플랜의 눈을 한 그 애의 빨간 입안에서 내 귀였던 고깃덩이가 쩍쩍 씹히고 있었다.
“…안 돼….”
충격과 공포는 몽환향에 가로막혀 꼭 닫힌 창 밖의 바람처럼 비명을 질렀다. 그때 갑자기 날카로운 소음이 심장을 꿰뚫었다. 나는 까마득한 심연, 검의 무의식의 바다가 물결치는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가 죽었다는 걸 알았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