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이야기
남편과 심하게 싸운 뒤,
우는 큰 아이를 아기띠에 메고 나왔던 어느 봄날.
갈 곳도, 숨을 곳도 없는 나는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이 전부였다.
벚꽃 비가 내리는 계절이었는데
내 옆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가 나를 보며 말씀하신다.
"참. 좋을 때다. 좋을 때."
'뭐가 좋을 때에요? 저는 지금 삶이 지옥 같아요. 할머니.'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삼키고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우리 엄마의 모습인가?
아니 내 모습인가?
할머니는 마치 나이 든 내가, 젊을 때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지옥 같은 날이었을지라도, 젊은 날이 그리워 잠시 들린 것 같은 모습.
나는 "네. 감사해요." 웃어 보였다.
아기띠에 안고 있던 큰아들은 벚꽃비를 맞으며 잠이 들어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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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가끔 문을 열고 나가면
88번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가서,
밤샘 과제 때문에 졸린 눈을 비비며 대학교에 갈 것만 같다.
아직도 사람 가득한 지하철에서 두발에 힘을 주고
파스칼 키냐르의 '심연들'이라는 책에 빠져있을 것 만 같다.
저녁이 되면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선후배들과 술을 먹고,
풋내기 사랑을 위로하기도, 위로받기도 그럴 것 같다.
젊음의 장면은 머릿속에 박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그런 일상들은 젊은 엄마가 된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곤 한다.
내 방에 떨어진 내 머리카락조차 치우지 않던 나는,
온 집안을 청소하고 삼시 세 끼를 차려 내야 하는 주부가 되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유로웠던 나는,
우는 아이 때문에 집 안에 처박혀 며칠이고 나오지 못했다.
집은 동굴처럼 어두웠고, 입구가 보이지만 나는 나갈 수가 없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 장면이 분명 아닌데,
나는 배역을 잘 못 전달받은 배우처럼 낯선 장면에 오래 서 있었다.
엄마라는 존재, 호칭, 직업, 의미 그것들은 나에게 무겁고도 무서웠다.
많은 사람들에게 결혼과 출산은 기쁨이겠지.
엄마라는 말은 사랑과 포용의 결정체일 테고.
그러나 나처럼 그 말이 버거운 사람도 분명 있다.
미니스커트를 입고 킬힐을 신고, 놀러 나가야 할 것 같은 내가
"엄마" 하고 부르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온다.
아직도 낯설 때가 있다.
내가... 누군가의 엄마가 되어 인생을 향유하고 있다니.
바쁜 아침. 옷 입고 학교 갈 준비 하랬더니,
둘째 아들이 수선을 떨며 나를 부른다.
"엄마. 엄마!!!"
"바쁜데! 왜!!!!!!"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 나에게
아들이 창 밖을 가리킨다.
"봐봐!!! 벚꽃이 벌써 저렇게 피었다고!! 엄마!!"
밖에는 녀석의 말 처럼 며칠 사이 벚꽃이 활짝 피었다.
둘째 아들의 웃는 얼굴이 꽃보다 더 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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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은 떠나간 것이 아니라, 쭉 이어져 오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건 지나친 행복도 지나친 불행도 아니었다.
엄마가 되는 건 모든 걸 잃는 것도, 모든 걸 얻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들과 손잡고 꽃피는 걸 보고,
꽃이 지면 또 꽃비가 내리는 걸 보고,
그렇게 계절을 함께 지나는 중이다.
이제야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