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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대체 누구야?

고민이 많아 다른 감정에 이끌리는 나

by 쿠마쿤


유년기, 청소년기에 흔히 하는 질문 중에 "흥미와 적성 중에 어떤 걸 추구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은 선생님들한테 자주 듣는 진부한 질문이다. 누구는 적성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누구는 흥미가 있어야 적성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다.

선생님들도 각각 생각이 다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러한 선생님들조차 적성이 맞아서 교직을 선택한 자는 얼마나 될까?"를 많이 고민해 보았다.

"사실 열정적이지 않은 선생님들은 흥미와 적성, 둘 다 안 맞아도 현실적으로 사는 거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란 사람을 알게 될까? 어떠한 일이 요구하는 소양에 모든 것이 기질적으로 맞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외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혼자 독립적으로 정신수양 하는 것이 어려움을 겪는다.

반대로, 내향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모임자리에서 정보를 처리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내 경우에는, 혼자서 밥 먹는 것이 여럿에서 밥 먹는 것보다 더 편하게 느낀다. 내가 먹고 싶은 메뉴를 내가 원하는 시간과 페이스에 맞춰서 먹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 과정에서 나란 사람을 하나하나 정의해 볼 수 있다.

동아리, 영어교류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예의를 갖추기엔 나의 감정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어서 나중에는 뚝딱이가 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내가 가진 한계를 직면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나의 감정에 솔직하게 표현한 순간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 역량으로 할 수 '없는' 것 들을 규정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게 되고 이것은 나를 행복해지는 하나의 지름길로 인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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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작가도 종종 타인의 시선에서 종종 질문받는다.

"외부활동은 잘하고 다니지 않냐? 너는 외향형 성향인 것 같은데? 새로운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잘 만나?"

이러한 질문들에 "이것도 다 배운 거죠 뭐"라고 무심하게 대답한다.


작가 관점에서 이러한 불편한 자리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처세술과 철학을 가지게 된다면 인생에서 크게 무서울 것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서로 생각이 달라서 연이 끊겨 상처를 받아보기도 하였다.

때로는 미련이 남고 후회하기도 하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런 상처는 치유되었다.

세상에 나를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의 모난 부분이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나를 못 받아주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이게 나야, 재밌지??" 이런 자세로 살아가다 보니 상대방에 대한 기대도 낮아지면서 현실과의 괴리가 줄어 인간에 대해 쉽게 대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필터를 통해 나와 결이 맞는 사람과 재밌게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생물학 적으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모든 사람의 DNA는 99.99%가 같지만 0.01% 로 사람마다 외모, 성격, 유전병, 감수성, 살아가는 방식조차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DNA를 가진 사람들을"나와 달라"라고 배척하기에는 그 사람이 가진 매력을 느낄 수 없다.

그 사람이 안 좋은 면에서도 반대로 좋은 것을 모방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해결해 보자.

이러한 마인드를 갖게 된다면 사람을 대할 때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1호선 지하철 내에 "예수를 믿으십시오! 불신지옥"을 외치는 70대 할아버지를 보고 "얼마나 죽음에 대해 두려우면 신을 토대로 죽음보다 고귀한 존재가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라는 연민의 생각을 해볼 수 있다.

신도림 역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온 신천지 신도들에게도 "신천지보다 중요할 수 있는 별자리의 움직임에 대한 소중함"에 대해 40분간 연설할 줄 안다면 더욱 튼튼한 나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죽음에 대하는 자세는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죽기 때문에 이 생을 열심히 살아갈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아무리 어두운 고통이어도 어차피 죽을 건데 견딜만하지 않겠어?" 이런 생각을 종종 하면서 고통을 피하지 않을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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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개인의 차이를 인정해 주고 존중하는 사회이다.

타인을 받아들이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시대가 온다면 권력자에 의해 나의 존재가 부정당할 수 있다.

나의 사고관이 틀릴 수도 있다는 오류존재성에 인정하고 사고를 바꾼다면 급변하는 시대에 더 빛나는 별이 될 것이다.

나를 찾기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배워보자.

다양한 경험들을 직접 해보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은가? 20대에 열심히 들어가서 막상 직장에 들어가니 마음이 공허하지 않은가?

이러한 경험들은 방황하며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어떤 게 나한테 맞고 괜찮을까?


이러한 질문에 정해진 답은 없지만, 남이 규정하는 삶은 추후에 공허함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때문에, 각자 살아온 옳다고 생각하는 삶의 방식에서 독자분들에게 알맞은 답을 찾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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