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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웨이 | 천리마와 조랑말의 사이는 얼마나 먼가?

[세상의 모든 좌절자에게 건네는 일회용 컵에 따른 고급 와인 한 잔]

by 아닛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사이드웨이(Sideways)>(2004)는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의 마당에 비질을 한 번 쓱 하고 물을 뿌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음의 엉킴을 풀지 못한 모든 좌절자와 함께 와인 한잔하며 이 영화를 보고 싶다.

<사이드웨이>는 와인 마니아들의 필수 영화라고 한다. 와인 입문 과정의 교과서 같은 작품이며, 와인에 관한 맛깔난 대사도 일품이다.

와인을 몰라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마리아 밸리 와이너리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시원하다.

캘리포니아 와이너리의 풍광. 맑으면 맑은 대로 아름답고, 안개 낀 날씨도 운치 있다.


이 글의 목차는 다음과 같다.

1. 극과 극의 두 친구가 여행을 떠나다.
2. '피노 누아'라 불린 사나이
3. 천리마와 조랑말의 사이는 얼마나 먼가?
4. 자신만의 방향과 속도를 찾은 두 친구


1. 극과 극의 두 친구가 여행을 떠나다.


단짝 친구의 유형을 보면, 서로 너무 비슷해서 붙어 다니는 경우가 있고, 정반대라서 서로를 보완해 주는 유형이 있다.

마일스(폴 지어미티)와 잭(토머스 헤이든 처치)은 명백히 후자이다.

마일스는 너무 진지하고 시니컬한 반면, 잭은 너무 가볍고 충동적이다.


마일스는 교사 일을 하며 소설을 쓴다. 책이 출판되기를 바라지만 좀처럼 출판사에서 확답을 주지 않는 상태이다. 이혼한 지 2년이나 됐지만 아직 전처를 잊지 못하고 있다.


잭은 11년 전에 히트한 드라마를 끝으로 지금은 광고로 근근이 활동하는 한물간 배우이다.

다음 주에 결혼을 앞둔 잭은 자신이 약혼녀 크리스틴과 장인에게 휘둘리는 것 같아 불안하다.

장인은 잭이 자기 회사에 들어와서 부동산 일을 배우기를 바란다.

잭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는 배우 일에 대한 불안감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 데릴사위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각자의 문제를 안고 있는 두 친구는 잭의 총각 파티를 할 겸 캘리포니아로 와인 투어를 떠나기로 한다. 이 여행은 와인 애호가인 마일스의 계획이다.

마일스는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로 수시로 여행을 다니며, 그 지역에 단골식당이 있을 정도로 지독한 와인 애호가이다.

그러나 잭은 마일스의 취미에는 관심이 없다. 와인 문외한이며, 마일스가 쓰는 소설도 읽지 않을 만큼 책과도 거리가 멀다.

마일스 역시 잭이 그토록 중시하는 성욕과 여자 부문에 취미가 없다.

잭은 "문화, 영화, 와인은 이해하면서 왜 내 성욕은 이해 못 해?"라고 마일스에게 진지하게 묻는다.


그런데도 둘은 신기하게 죽이 잘 맞는다.

마일스는 오직 와인을 생각하고, 잭은 오직 여자를 생각하며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에서 두 친구는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자기 문제의 진면목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속의 엉킨 실타래가 풀리면서, 자기가 인식했던 것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문제는 재정의된다.

이들은 모두가 꿈꾸는 최고의 여행을 한 셈이다. 타성에 젖은 가치관을 깨고 성장하는 여행.

게다가 아름다운 풍광과 근사한 와인은 덤이다.




2. '피노 누아'라 불린 사나이


마일스는 이번 여행을 하며 캘리포니아의 단골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마야(버지니아 매드슨)와 재회한다.

잭은 마야의 친구 스테퍼니(산드라 오)와 만나자마자 금세 눈이 맞는다. 그리고 잭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네 사람은 커플 데이트를 하게 된다.

잭과 스테퍼니가 꼭 붙어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동안, 마일스와 마야는 어정쩡하게 떨어져서 대화한다.

마야는 마일스에게 호감을 표하지만, 아직 전처 빅토리아에게 미련이 있는 마일스는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게다가 그는 얼마 전에 빅토리아가 재혼했다는 소식에 충격은 받은 상태이다.


그러나 와인 애호가인 두 사람은 이야기가 잘 통한다.

이들의 와인에 관한 태도에는 자신들의 인생관이 그대로 녹아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결국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마일스는 와인 취향이 매우 까다롭다. 그는 특히 '피노 누아'라는 적포도 품종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마야 : "왜 피노를 좋아해요? 거의 광적이던데."

마일스 : "글쎄요. 재배가 힘든 품종이잖아요. 껍질은 얇지만 성장이 빠르고. 카베르네완 달리 아무 환경에서나 못 자라서 끊임없이 보살펴 줘야 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 지역에서만 잘 자라고. 인내심 없인 재배가 불가능한 품종이죠. 시간과 공을 들여서 돌봐줘야만 포도알이 굵어지고, 그렇게 잘 영글면, 그 맛과 오묘한 향이 태곳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줘요. 또 다른 품종과는 달리 소박함도 느껴지고.."


마일스는 이를테면 '피노 누아라 불린 사나이' 같은 사람이다.

그는 내심 자신이 최적의 환경에서 잘 재배되지 못하여 실패한 와인이 되었다고 느낀다.

남들은 다 제자리를 찾아가고 발전하는데 자신만 도태된 듯한 느낌이다.


마일스 : "당신은요? 왜 와인을 좋아해요?"

마야 : "묘한 매력을 느꼈죠. 와인을 마시면 갖가지 생각이 떠올랐고. 전 와인의 삶을 찬미해요. 한 생명체가 포도밭에서 익어가는 모습. 비가 내리고 따사로운 햇살.. 와인이 만들어지고 숙성되는... 오랜 세월 동안 죽어간 사람들... 또 와인은 변화무쌍하죠. 따는 시기에 따라 그 맛이 제각각이잖아요. 생명력을 가졌기에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하죠. 당신이 아끼는 61년 산 슈발 블랑처럼 제맛을 한껏 뽐내곤 삶을 마감하죠. 최고의 맛을 선사한 후에."


이렇게 말하고 있는 마야는 정말 포도의 여신이 된 것처럼 '반짝반짝' 빛이 난다.

마야.jpg 와인을 이야기하는 마야에게 신비스러운 빛이 나고, 마일스는 그 빛에 도취된다.


두 사람의 와인 사랑법은 정반대다.

마일스에게 와인은 등급에 따라 당연히 차별되는 대상이다.

맘에 들지 않은 와인에는 '버스 매연 맛'이라는 둥 '구강 세척제'보다 못하다는 둥 혹평을 아낌없이 퍼붓는다.

그러나 마야에게는 모든 와인이 각자의 향과 맛을 뿜어내는 축제의 장이다.


인생을 목표 지점에 누가 더 빨리 도착하는가의 관점에서 보면 마일스는 옳다.

그러나 마야의 관점에서 보면 인생의 모든 길목은 저마다의 생명력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서두를 필요가 없다.




3. 천리마와 조랑말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먼가?


하루에 천리를 간다는 천리마와 평범한 조랑말이 이들의 앞에 있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아마도 마일스는 천리마를 선택할 것이고, 마야는 조랑말도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천리마를 칭송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지만, 마야는 천리마와 조랑말의 서로 다른 매력을 볼 수 있는 드문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순자>의 수신(修身) 편에는 천리마가 나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귀가 있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다. 그러나 조랑말이라도 열심히 가기만 하면 열흘이면 같은 목적지에 너끈히 도달할 수 있다(夫驥一日而千里, 駑馬十駕則亦及之矣).
장차 끝없는 것을 다하려 하고 극한점이 없는 것을 쫓으려 하는가(將以窮無窮ㆍ逐無極與)?
그렇게 하면 뼈가 끊어지고 근육이 손상되어 죽을 때까지 달려도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其折骨絶筋終身不可以相及也).
장차 도달할 목적지가 분명하다면 천리가 비록 멀다 해도(將有所止之, 則千里雖遠),
혹은 더디고 혹은 빠르며, 혹은 앞서고 혹은 뒤처지는 것은 있을지라도(亦或遲或速ㆍ或先或後),
어찌 목적하는 곳에 이르지 못하겠는가(胡爲乎其不可以相及也)? ...
그러므로 반걸음이라도 걸어 쉬지 않는다면 절름발이 자라라도 천리를 가게 된다(故蹞步而不休, 跛鱉千里). ...
만약 한 번은 나아가고 한 번은 후퇴하며, 한 번은 왼쪽으로 가고 한 번은 오른쪽으로 간다면(一進一退, 一左一右), 여섯 마리의 천리마라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六驥不致).


순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천리마와 조랑말의 차이에 관한 것이 아니다.

'하루면 천리를 가는 천리마'와 '열흘이 걸려 천리를 가는 조랑말'의 차이가 얼마나 미미한가를 말한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에 있어서는 천리마나 조랑말이나 차이가 없다.

빠르냐 느리냐의 구분이 있을 뿐이다.

속도는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를 이상으로 내세우는 올림픽에서나 중요한 것이다.


순자는 속도보다 방향의 중요성을 말한다.

아무리 천리마라도 목적지가 혼란스럽다면 이리저리 날뛰기만 하다가 근골이 다 상하여 죽게 될 것이다.

설사 목적지에 도달했다 해도 쉬지 못하고 바로 다음 목적지로 내달려야 한다.


그런데 왜 모두들 천리마가 되지 못해 안달할까?

우리는 방향이 하나로 고정돼 있고 속도만 중요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한 방향만 본다면 옆에서 뛰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방향이 고정된 사회는 필연적으로 경주마를 키워낸다.


마일스의 바람과 달리 전처 빅토리아는 재혼을 했고, 출판사는 시장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했다.

모두 결혼에 골인하고 출간이라는 결승점으로 뛰어가는데 자신만 제자리걸음이다.


마일스의 소설 제목은 '어제의 내일(The Day after Yesterday)'이다.

그는 '오늘'을 '어제의 내일'이란 말로 비틀어서 생각한다.

공교롭게도 마일스의 '오늘'은 그가 '어제 기대했던 오늘(=어제의 내일)'과 완전히 반대되는 결말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절망해야 하고, 절망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된다.


해맑은 잭은 마일스를 위로한다. <사이드웨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화 장면이다.


잭 : "책이야 다시 쓰면 되잖아."
마일스 : "난 끝났어. 영어 교사로 인생 쫑 낼 거야. 세상은 내 글에 관심 없다고. 난 자살할 처지도 안 돼."
잭 : "무슨 소리야?"
마일스 : "생각해 봐. 헤밍웨이, 섹스턴, 플라스, 울프... 전부 책 내고 자살했어."
잭 : "존 케네디 툴은 출판 전에 자살했어. 그래도 유명하잖아."
마일스 : (어이없게 쳐다보며) "고~오맙다."


책 출판이 거절당해 자살도 못 하겠다는 친구, 맑은 눈으로 자살을 독려하는 친구.

이래서 둘이 친구구나.

두 개그 콤비의 대화는 계속 빵빵 터진다.


잭 : (영혼 없는 충고로) "포기하지 마. 넌 잘될 거야."
마일스 : "반평생 살고도 내세울 게 없어, 아무것도! 난 창문에 묻은 지문 신세야. 하수구를 통해 바다로 흘러갈 똥 묻은 휴지 신세라고."
잭 : "바로 그거야. 방금 그 말 얼마나 근사해? '바다로 흘러갈 똥 묻은 휴지' 난 그런 표현 못 해."
마일스 : "부코우스키가 한 말이야."
잭 : (더 이상 위로의 말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입을 벌린 채 마일스를 바라본다.)


마일스는 왜 굳이 '오늘'을 '어제의 내일'이라고 표현했을까?

오늘을 설명하기 위해 어제라는 과거가 필요하고, 오늘의 가치는 어제가 기대한 내일에 얼마나 근접했는가로 판단된다.

그러면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오늘(지금)은 실종된다.

오늘을 계속 '어제의 내일'로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천리마라 해도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끊어질 뿐이다.


순자가 말하는 방향은 '집단적이고 무지성적 방향'이 아니라 '개인적이고 의식적인 방향'이 되어야 한다.

속도의 굴레에서 진정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방향의 자유로움이 필요하다.

우주 만물은 여러 방향으로 자신만의 속도로 자신을 실현한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을 표현하는데 미숙하다.

마일스는 속도가 아니라 자신의 방향을 점검해야 할 때다.




4. 새로운 방향과 속도를 얻은 두 친구


잭은 스스로 본능 빼면 시체라고 생각한다. 잭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스테퍼니와 하룻밤을 보낸 후 그녀에게 급속도로 빠진다. 스테퍼니는 크리스틴과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조종하려 들지도 않고, 야수처럼 정열적인 여자다.


그러나 사실 잭은 크리스틴과 장인에게 종속될 것 같은 자신의 처지가 두려웠던 것이다. 자신의 커리어는 이제 내리막길이고, 남은 길은 장인의 사업을 이어받는 것이다.

잭은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본능적 충동으로 덮으려 했다. 불안과 두려움은 사랑으로 쉽게 혼동된다.


잭은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 스테퍼니에게 들통나서 코가 부러지도록 얻어맞는다.

그러나 잭의 본능은 멈추지 않고 또 하나의 사고를 친다.

만만해 보이는 웨이트리스를 꼬시려 했으나, 잭은 알몸으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는다. 설상가상 결혼반지가 든 지갑을 그녀의 집에 두고 왔다!

이때 잭의 진짜 속마음이 드러난다.


잭 : "세상에 하나뿐인 반지야. 실수한 것 알아. 내가 잘못했어. 날 도와줘, 마일스. 크리스틴 없인 난 못 살아. 난 크리스틴이 필요해. 난 나쁜 놈이야. 그렇지만 도와줘, 제발 부탁이야. 크리스틴 없인.. 난 아무것도 아냐. 그녀 없인 난 못 산다고!"


마초처럼 굴던 잭은 아이처럼 엉엉 운다.

잭은 크리스틴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방향을 계속 의심해 왔다. 스테퍼니라는 새로운 방향을 정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크리스틴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의 방향에 확신을 갖게 된다.

사랑꾼 잭은 무사히 반지를 찾고 결혼식도 무사히 끝낸다.


마일스는 잭의 초대로 결혼식에 온 전처 빅토리아와 마주친다.

그녀는 켄이라는 좋은 남자와 재혼하고 자기와 있을 때보다 행복해 보인다.

켄은 머리숱도 빽빽하고 키도 크고 매너까지 좋다. 바비 인형의 남자친구 켄과 닮은 건 안 비밀.

빅토리아의 임신 소식까지 삼 연타를 맞은 마일스는 그들을 뒤로하고 쓸쓸히 피로연을 빠져나온다.


이제 마일스는 빅토리아와의 재결합 가능성과 소설 출간의 희망을 모두 완전히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그는 집에 와서 그동안 고이 모셔두고 감히 따지 못했던 1961년 산 슈발 블랑을 충동적으로 꺼낸다.

마일스는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가서 햄버거를 먹으며 와인을 아무렇게나 따서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부어서 콜라처럼 마신다.

와인을 시음하는 절차를 그렇게 따지던 마일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일스는 잭에게 잔에 코를 완전히 넣고 와인의 향을 음미하는 등의 정교한 시음 원칙을 알려준다.
그랬던 마일스는 지금 귀한 와인을 누추한 플라스틱 컵에 따라 마신다. 그러나 왠지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이 장면은 좌절과 자포자기의 순간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감동적이다.

마일스는 와인을 즐기기 위해서는 특정한 방향과 경직된 절차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이제 마일스는 모든 겉치레를 벗어던지고 플라스틱 컵에 든 순수한 와인 그 자체와 대면한다.

그런데 '누추한 컵에 귀한 와인'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자유롭다!


마일스는 모든 희망을 내려놓고 영어 교사와 독신의 삶이라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왠지 전보다 가벼워진 모습이다.


모든 문을 닫았을 때 새로운 문이 열린다.

잭의 거짓말 덕택에 마일스는 간신히 가까워진 마야와 멀어지게 되었다. 마야 입장에서는 잭의 결혼 사실을 함구했던 마일스도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마일스는 자기 같은 나이에 능력과 돈이 없으면 도축장으로 직행할 소나 다름없으며, 책 출판한다고 사기 친 걸 알면 마야가 자기한테 관심을 끊을 거라고 믿었다.

마일스는 떠나면서 마야에게 전화 메시지로 그동안 속였던 것을 전부 실토한다.


잭 : "책 나온다는 것 사실이 아녜요. 이번에 될 줄 알았는데. 또 물먹었죠. 나란 사람... 글은 고사하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사실 마야 입장에서는 책의 출간 여부는 큰 문제가 아니다. 마일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것일 뿐이다.

마야는 마일스에게 화가 덜 풀렸지만, 그가 준 소설 원고를 꼼꼼히 다 읽었다. 그리고 마일스에게 메시지를 남긴다.


마야 : "지난밤에 다 읽었어요. 단어 선택이 탁월하더군요. 출판 안 되면 어때요? 삶의 아름다움과 고통을 잘 그려냈어요. 실제 겪었던 일인가요? 힘들었겠어요. 포기하지 말고 계속 글 써요."


소설을 꼼꼼히 읽었음이 느껴지는 세부적인 논평과 함께 자신을 찾아오라는 여지를 남긴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 마일스는 마야의 집으로 달려간다.

이제야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제대로 속도를 내며 달린다.


마일스가 마야의 현관문을 똑똑 두드리면서 영화는 끝난다.

굳이 새로운 문이 열리는 장면은 보여줄 필요가 없다.




<사이드웨이>는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옆길' 정도로 할 수 있겠다.

영화 포스터에서 누워있는 와인병 속의 두 친구의 모습은 우리가 위로만 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도 옆으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포스터2.jpg


61년 산 슈발 블랑을 아껴두는 이유를 묻는 마야에게 마일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마일스 : "특별한 순간에 특별한 사람과 마시고 싶었죠. 결혼 10주년에 따려 했는데..."
마야 : "그 와인을 따는 순간이 특별한 순간이에요."


마일스는 이제 진정으로 마야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와 미래를 떨치고 나면, 지금 이 순간에는 천리마든 조랑말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

와인을 따는 순간이 진정 특정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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