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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기자가 만난 사람 22) 박정희 서울연극협회장

by 최재혁

'서울연극제'는 벌써 올해로 45회를 맞은 유서 깊은 축제다. 심도 있고, 대단한 연극들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를 주최한 '서울연극협회'가 있다. 지난번에 서울연극협회장님과 인터뷰를 했었는데, 그 이야기를 잠깐 다뤄보겠다.


작년 서울연극제를 너무 행복하게 즐겼다. 총 6편의 연극을 감상했는데, 모두 주옥같은 작품들이라 내면의 깊이를 키웠다.


특히 '반쪼가리 자작'은 역대 최고의 연극이라고 느낄 정도로 작품성이 대단했고, '타자기 치는 남자'는 극에서 다루는 의미가 확연했다.


어쩌다 연극에 빠지게 됐지만, 이처럼 깊이 있는 극은 볼 수 없었다. 상업 연극 위주로 가볍게 즐기다 예술 연극의 재미로 빠지게 된 계기가 서울연극제였다.

덕분에 갈증이 더 커졌다. 우리나라 연극의 역사가 궁금했고, 연극의 미래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연극협회장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정의 협회장은 40년 넘게 연극계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연출자다. 극단 초인에서 실험적이고 의미 있는 작품을 꾸준히 시민에게 선보이며, 진부함 속에 갇히기보단 알에서 탈피한 인간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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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탈했다. 협회의 작은 사무실에 대단한 물품이 없었고, 오직 연극에 관한 몇 가지의 책과 포스터뿐이었다. 어떤 협회장들처럼 골프채를 가져다 놓거나, 심심풀이로 읽을 가벼운 책도 없었다.

본 인터뷰는 '대한민국 연극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됐다. 그래서인지 박정의는 "뭐부터 말씀드리면 될까요?"라고 웃어 보였다. 나는 "전부 다 말씀해 주세요"라고 맞장구쳤더니, 그는 "밤을 새워야겠네요"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대한민국 연극의 역사는 1970~80년대 가장 환하게 불타올랐다. 각각의 대학에서는 정권에 맞서기 위한 도구로 연극을 선택했다.


예전 나라님들의 수탈을 못 이겨 '극'으로 한을 풀던 우리 조상과 비슷하다. 연극을 통해 세상과 맞서고, 함께 맞설 동지들에게 이론이 아닌 감정으로 다가간 것이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 들어 대학을 향한 탄압이 극심해졌고, 신촌을 중심으로 한 연극계도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연극인들은 근처에 그나마 살만한, 저렴한 가격대의 집을 찾다 지금의 강북구 쪽으로 모이게 됐고, 대학로에서 연극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그에게서 듣는 연극 이야기는 마치 할아버지에게 듣는 전래동화 같았다. 대한민국 연극의 산증인으로서, 연극의 발자취부터 현재 문제점까지 소상히 알 기회였다.


함께 동석한 후배 기자는 박정의에게 특별한 호감을 느꼈다. 우리가 예술인 하면 쉽게 떠오르는 자유분방하고 진취적인 이미지를 봤다고 한다. 실제로 편한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 무척 좋았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말하고 싶은 건 "영화처럼 연극을 편하게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솔직히 서울 쪽 연극은 대부분 혜화에 몰려있고, 다른 지역도 연극 무대가 몇 없는 터라 자주 찾긴 힘들다.

그러나 영화에서 느낄 수 없는 배우들의 싱싱한 에너지, 배우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어 나가는 장점이 뚜렷하기에 한 번쯤은 연극 무대를 찾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만나고서 느낀 세 줄 포인트

좋은 문화란 도대체 무엇일까?


연극협회장에게서 들은 연극의 본질과 의미


여러분도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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