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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기자가 만난 사람 23) 이창동 영화감독

by 최재혁

혹시 영화 싫어하는 분이 있는가? 우리나라는 영화를 참 좋아하는데, 이 작은 나라에서 천만 관객만 몇 편인지... 좋아하는 영화가 있는 만큼, 사랑하는 영화감독도 있을 것이다. 기생충의 봉준호, 올드보이의 박찬욱, 불륜의 홍상수 등 다양한 분야의 감독님이 있다. 여러분은 어떤 감독을 좋아하는가?

대한민국 3대 영화제라고 아는가? 세계 3대 영화제는 칸, 베니스, 베를린으로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데 우리나라는 뭘까? 아마 부산국제영화제 정도만 알고 있을 것이다.


부산과 함께 부천, 전주가 대한민국 3대 영화제라고 불린다. 정확한 유래는 모르겠지만, 규모와 상징성 면에서 뽑힌 듯하다.


부산은 아시아 최대 영화제라는 명칭처럼 아시아의 다양한 영화를 상영한다. 부천은 자극적이고 특별한, 마이너하지만 마이너가 아닌 영화를 선보인다. 전주는 수준 높은 독립영화가 다수를 차지한다.


난 다 가봤다. 취재를 명목으로 3대 영화제에 참석해, 못해도 5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부산의 다양성, 부천의 광기, 전주의 그윽함의 향기와 체취를 담았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제는 '전주'다. 전주는 어떤 곳인가? 한옥마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후엔? 전북에서 가장 큰 도시, 하지만 타 광역시에 비해 특색은 떨어지는 곳이라고 느껴진다. 막상 전주를 경험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영화제가 열린 전주돔과 한옥마을 근처는 그 흔한 아파트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땅콩 건물이 가득했다. 특유의 적색 가옥은 공기를 톤 다운 시켰고, 붐비는 거리 속에서 원인 모를 차분함이 느껴졌다. 마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틀어주는 씁쓸한 독립영화처럼 말이다.

독립영화는 어렵고 불편하다? 독립영화가 무엇인가? 상업영화의 반대, 예술영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저예산, 혹은 투자가 적은 영화를 독립영화라 부른다. 상업영화는 수익을 담보로 제작한다. 수익이 없으면 실패한다. 하지만 독립영화는 작품성과 감독의 성향이 더 우선이다. 그러니 독립영화의 주제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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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독립영화일까? 막대한 금액을 투자받는 건 아니지만, 독립영화 보단 상업영화에 가깝다. 하지만 이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과 색깔의 영화를 제작한다. 왜, 우린 상업영화 속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하는 감독을 안다. 봉준호, 박찬욱 등.

보고 나서 진한 여운이 맴도는 영화를 좋아한다. 즐기기보단 배우고 싶어 영화를 본다. 영화는 예술이기에, 예술로 즐기고 싶다. 자극적이고 유쾌한 영화가 내 기분을 전환시켜줄 때도 있지만, 삶을 돌아보고 고민하게 만드는 깊은 영화가 좋다.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은 1997년 나온 초록물고기다. 어느덧 27년 차를 맞았다. 하지만 그는 6편의 장편 영화만을 촬영했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버닝까지. 그의 영화가 귀하고 귀한 이유 중 하나다.


혹자는 이창동의 영화가 너무 깊고 어둡다고 싫어한다. 충분히 납득된다. 불편한 현실 속에서 굳이 어두운 영화를 보기 싫겠지. 하다못해 기생충도 어둡고 불편하다고 안 본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하지만 이창동은 어둠을 헤집어 희망을 발견한다. 초록물고기의 막동이 내린 잘못된 선택을 보며, 내 욕망과 방향을 점검하고. 박하사탕의 영호를 보며 순수했던 그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며 타인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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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에선 진정한 사랑의 정의를 다시 내리게 하고, 밀양을 통해 내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게 뭘지 고민해 본다. 시와 버닝은 진정한 나를 찾아가게끔 한다.


이창동의 어렵고 불편한 이야기는 나의 내면을 꺼내 탐구하기에, 발가벗겨진 듯한 혼란이 찾아온다.

하지만 내가 성장하기 위해선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2시간을 투자해 알을 깰 수 있다면, 더군다나 그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앞의 이야기가 무척 길었다. 하여튼 2022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을 만났다. 그의 영화를 한 번도 극장에서 본 적 없기에, 굳이 KTX 타고 전주까지 내려가 20년도 더 된 영화를 감상했다.

오아시스, 초록물고기, 시까지 총 3편을 봤다. 박하사탕도 보고 싶었지만, 이창동의 영화를 연속으로 감상하기엔 몸과 정신이 아파한다. 초록물고기와 시를 보고 나선 관객과의 대화(GV)가 열렸다.

이창동 감독은 초록물고기를 보다 뛰쳐나갔다. 그의 숨소리가 들릴락 말락 한 위치에서 영화를 봤기에 알 수 있었다.


거구의 아저씨가 급히 나가길래 뭘까 했는데 끝까지 안 들어오더라. GV가 시작하자마자 이창동 감독은 사죄의 뜻을 알렸다. 리마스터링한 작품에 살짝 이상이 생겨, 손보러 나갔다더라. 난 봐도 아무렇지 않던데, 자기 작품을 볼 100명의 관객을 위해 달려 나간 것이다. 참 프로페셔널하지 않은가.

초록물고기를 보고 생각이 깊어졌다. 얼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한석규가 출연해서 그럴까.

이창동의 씁쓸한 이야기가 평범한 비주얼의 한석규와 만나니, 현실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감상하는 듯했다. 더군다나 20대 중반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한석규가 영화를 감상하는 내 모습과 겹쳐 보였다. 난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가. 한석규와 내 고민은 같았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좋아하는 감독과 대단한 영화에 대해 논할 때만큼 행복한 건 없다. 나는 물었다. "막동(한석규)이 미애(심혜진)을 바라보는 시선이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 처음엔 사랑, 이후엔 연민, 마지막엔 알 수 없음. 어떤 의도로 연출했는가?“

이창동 감독은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텅 빈 바닥을 내려다봤다. 숨이 3번 정도 오고 갈 시간이 지나자 "젊은 남성의 경우에 사랑하는 여자를 인물이 아닌, 이미지로 본다고 생각한다. 첫 만남부터 막동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언뜻 느껴지는 이미지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답변은 명쾌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이 깊어졌다. 난 세상을 이미지로 보는가. 행복을 위한 대상으로 여기는가, 대상으로 인해 행복한 것인가. 막동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얄팍한 성공과 사랑하는 미애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의 능력이 인정됐고, 필요로 하기에 있던 것이다. 그를 이용한 배태곤 사장도 막동의 심정을 잘 알기에 이용할 수 있었다.

만약 여러분이 영화제를 참석한다면, 꼭 감독과 배우에게 질문을 던지길 바란다. 감상한 영화의 풍미를 더하며, 생각의 깊이를 확장할 수 있다. 게다가 선물도 준다. 난 이창동 감독의 친필 사인이 담긴 영화 버닝 대본집을 받았다. 질문과 대본집만으로도 전주에 투자한 걸 모두 회수했다.

이후에도 이창동 감독과 자주 마주쳤다. GV가 끝난 후 함께 복도를 거닐고, 영화 시를 감상할 때도 GV가 열렸다. 아, 영화제 개막식 때도 열 걸음 앞에서 만났다. 전주에 있는 나흘 동안 5번 넘게 만났기에, 난 "전주영화제가 아닌 이창동전주영화제였네"라고 후기를 남겼다.

여러분은 어떤 영화, 어떤 영화감독을 좋아하는가? 만약 나와 방향성이 맞지 않더라도, 오늘만은 이창동의 영화를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자연스레 관심이 갈 법도 하니 말이다.

여러분에게 추천한다. 10~30대라면 초록물고기. 사랑을 하고 있다면 오아시스. 삶이 어렵다면 박하사탕. 관계에 아파한다면 밀양. 나를 모르겠다면 시. 편하게 이창동을 만나고 싶다면 버닝을 보시라. 후회 없는 선택일 것이다.



* 만나고서 느낀 세 줄 포인트

이창동 감독에게선 '거장이란 이것이다!'하는 이미지가 느껴졌다.

그의 영화 내공은 상상을 초월했고

영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행복으로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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