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는 누구인가? 박경리, 조정래, 김영하 등 다양한 인물이 떠오른다.
부산은 문화·관광 도시라서 그럴까? 한 해에도 정말 다양한 축제와 행사가 열린다. 동네의 작은 축제부터 전국에서 몰릴 정도로 큰 행사까지 규모를 가리지 않고 열린다.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부산 사하구에서는 매달 유명인을 초청해 강의를 열고 있다.
양정무 한예종 교수부터 삼진어묵 대표, 유홍준 교수에서 김영하 작가까지. 이름만 들어도 입이 떡 벌어질 인물이 300명 남짓의 주민 앞에서 강의한다. 수강생 입장에선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김영하는 '나는 왜 창의적이지 않은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시작했다. 나는 왜 창의적이지 않은가. 더욱이 글 쓰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해볼 질문이다.
창의성은 21세기의 가장 핫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의 유명 인사들이 창의성을 무기로 일확천금의 부자가 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창의성이 있어야 크게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부모들은 아이에게 '창의성'을 넣어주려고 노력한다. 아이가 창의적이어야 성공할 수 있고, 사회에서 통하기 때문에. 정리하면 공부도 잘하고, 창의적인 데다가, 여우같이 본인의 실속도 챙길 줄 알아야 한다. 바라는 게 참 많긴 하다.
모든 사람이 창의성을 원하고, 소리치니 당연히 필요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김영하는 "창의성이 왜 필요한가요?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창의적인 사람은 죽임당했어요. 99명이 YES를 외칠 때, NO를 외치는 사람을 살려뒀을까요?"라고 설명했다.
그렇다. 강한 권력으로 국가를 통치하던 시기, 특히 농업사회에선 튀는 사람을 반길 리 없다. 다 함께 농사짓고, 수확물을 나누려는데 반기를 들거나 베짱이처럼 놀고먹는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잊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후 김영하는 창의성이 필요한 작가들에게 자만의 연습 방법을 전수했다.
"서로 아무 연관 없는 단어를 연결시켜라“
창의성은 규칙적이지 않은, 의외성 100%일 때 발휘된다. 서로 아무 연관 없는 단어를 연상하고, 연결시킬 수 있다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이키를 떠올렸다면 죽음, 갈매기,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연결되지 않는 단어를 나열해 보는 것이다. 쉽게 쿵쿵따에서 연관성을 지운 채로 게임을 해보면 될 듯하다.
김영하는 '내 마음의 호수'로 예를 들었다. 100년 전에 마음과 호수를 연관시킨 건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이 인용되고 사용되어 진부해졌다. 창의는 쓰일수록 진부해진다. 그는 "붉은 여왕 게임처럼 계속 달려야 하는 게 창의성"이라고 강조했다.
"이 장소에서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하라“
첫 번째 연습 주제와 유사하다. 창의성은 의외성을 띨 때 발휘된다. 집 앞 카페에 갔는데 도널드 트럼프가 코카콜라를 마시고 있다던가, 서울시청에서 갑자기 오징어게임이 열린다든가 하는 상상이다.
김영하는 자신이 교수로 재직 중, 학생들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 50개를 적어오라고 했다더라. 자꾸 예상을 깬 상상을 통해 나를 가둔 세상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강의를 듣다 보니 '작가가 이렇게 말 잘해도 되는 거야?' 싶을 정도로 즐거웠다. 그는 말 한 번 버벅이지 않고, 자신의 소신과 생각을 가감 없이 밝혔다.
때론 수강생들과 티키타카를 이루기도 하며, 단어가 생각이 안 나 "그게 뭐였을까요?"라며 약간의 빈틈도 선보였다.
'물 흐르듯 말하라'는 문장을 그대로 적용한 사례였다. 굉장히 스피디한 어법으로 귀에 쏙쏙 들리게 말하는데, 역시 한 분야의 정점에 이른 인물은 예사롭지 않다고 느껴졌다.
얼이 빠진 채로 언변에 녹아들다 보니, 어느새 1시간 반이 훌쩍 지났다. 학교에서 들은 어떤 강의도 이보다 재밌지 않았다. 강사의 능력이 이토록 중요하구나.
끝으로 김영하는 강의에서 "모두 창의적일 필요 없습니다. 규칙적이고 성실한 사람도 사회에 매우 필요합니다.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은 창의를 예술로 간접 경험하거나, 즐기시길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더불어 "창의력은 안정적일 때 발휘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이 창의적인 이유는 잃을 게 없고, 보상도 없기 때문"이라며 대한민국에서 창의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유를 설명했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죽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다 보니,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고 있다. 단지 살려고 삶을 사는 게 아닌데, 살기 위해 사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언제쯤이면 우린 삶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창의적일 수 있는 그날이 오길 바라며, 김영하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 만나고서 느낀 세 줄 포인트
창의성을 요구하는 사회에 큰 불만은 없었고
기자라는 직업 또한 어떻게 보면 창의성을 요구했기에 더더욱 불만이 없었지만
꼭 필요한 능력이란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