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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기자가 만난 사람 24) 박찬욱 영화감독

by 최재혁

여러분에게 최고의 영화는 무엇인가? 많은 분이 쇼생크탈출, 기생충, 해바라기 등 명작을 손에 꼽는다. 나는 2편의 영화 사이에서 갈등한다. 박찬욱의 올드보이와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그 주인공이다.

올드보이는 말이 필요 없는 명작이다. 볼 때마다 충격을 머금는, 사실 블로그를 하게 된 계기가 올드보이의 후기를 적고 싶어서였을 정도다. 하여튼 오늘의 주인공은 올드보이의 감독, 박찬욱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내게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안겼다. 인생 첫 영화제 방문인 만큼 기대가 컸다.

재작년 인천에서 부산까지 출장을 갔고, 직접 차비를 지불할 정도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입구에서 탁 막혔다. PCR 검사를 안 했다는 이유로 '프레스 배지'를 받지 못했다.


덕분에 일정이 제대로 꼬였다. 배지가 있어야 영화를 예매할 수 있다. 아니, 내 돈 내고 봐도 되지만, 이미 남은 일반석 표도 매진된 상태였다. 결국 3박 4일 일정 중 이틀을 포기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남은 일정이 계획대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난 영화제 방문마다 과거의 영화를 찾아본다.


GV로 유명 인사가 찾아오거나, 평소에 볼 수 없는 유명 영화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었다. 그렇게 방문 3일 차, 친절한 금자씨 상영장을 찾아갔다.


일정표에는 '박찬욱'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첫 영화제 방문이다 보니, 저 이름이 방문자인 건지 뭔지 모르겠더라. 혹시 박찬욱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 상영이 끝나자 '박찬욱 감독 GV'라는 문구가 집채만 한 크기로 내게 다가왔다. 절규했다. '내가 박찬욱을 만나다니' 가장 사랑하는 영화의 감독과 직접 마주해, 영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그대로 사망할 뻔했다.


박찬욱은 '광기'에 대한 주제로 철학박사와 대화를 이어갔다. 복수 3부작에 등장한 서로 다른 광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철학박사는 미셸 푸코의 이론을 들며 자기 생각을 밝혔다.

둘의 대화는 대충 이해가 가지만, 어렴풋이 알쏭달쏭했다. 전문가들의 대화가 원래 그렇지 않은가.

마침내 질문 시간이 찾아왔다. 너무도 떨리는 마음에 당장 손을 들고 싶지만, 괜스레 이상한 질문을 했다간 평생 이불킥을 찰 것 같아 고민됐다. 하지만 굴러온 기회를 걷어차는 건 내가 아니다. 번쩍 손을 들었다.

난 먼저 "영화 너무 재밌게 잘 봤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박찬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인사했다. 키야. 대한민국 최고의 감독에게 90도 인사를 받다니. 난 죽어도 여한이 없다.


감동을 마음에 남긴 채 질문했다. "금자는 감옥에서 교회에 다니다, 출소해서는 법구경을 들고 다닌다. 보기엔 기독교에서 불교로 옮긴 듯하지만, 사실 법구경엔 총기 제작 도면이 그려져 있기에 들고 다니는 것뿐이다. 친절하다는 금자가 끔찍한 복수를 저지르는 아이러니는 혹시 교회에서 불교로 적을 옮기고,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교리에다 살생을 위한 총기를 그린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장내는 조용했다. 너무 깊은 질문이었을까. 사람들은 '쟤가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뜨거운 차를 한 모금 하는 시간 정도였을까.


마침내 입을 연 박찬욱은 "법구경은 여성 간첩이 사용한 물건인데 그 자체가 역설이라고 생각했고요. 전도사가 금자를 찾아와 회유하는 장면에서 금자가 귀엽게 '저 이제 절 다녀요'라며 거절하는 장면이 너무 좋더라고요. 거절 장면을 찍기 전에 어떤 도구를 쓸까 고민했는데, 마침 법구경이 있어 사용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질문을 마친 난 순간 울컥했다. 박찬욱과의 대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의 감독과 나눈 대화. 말을 주고받고, 서로의 시선을 나눴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했다. 그런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그 사실을 내 몸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이 감정을 회사 국장에게 말했다가 크게 혼났다. "기자는 누구나 만날 수 있어. 누구 만났다고 호들갑 떨지마"라고 말이다.


좋은 걸 어떡하겠는가?



* 만나고서 느낀 세 줄 포인트


최고의 영화감독에게서 느껴진 '괴짜'의 포스


영화는 보이는 예술이기에


감독이 상상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반가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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