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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쿠팡Inc 의장/정체된 이커머스 시장 파괴자

by 최재혁

“고객이 감동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김범석 쿠팡Inc 의장 겸 창업주가 ‘로켓배송’ 시행 초기, 비용 부담이 커져 내부에서 전략 수정이 거론되자 회의 자리에서 남긴 말이다. 그는 고객 경험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세계를 뒤흔든 리더의 생애


김범석 쿠팡Inc 의장 겸 창업주는 197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미국 동부의 이민자 가정에서 자라며 동서양의 사고방식을 모두 체득했다. 내성적이지만 관찰력이 뛰어났던 소년은, 세상 돌아가는 방식보다는 ‘왜 그렇게 되는가’를 더 궁금해했다.


명문사립학교인 디어필드아카데미를 졸업한 후, 그는 하버드대학교 MBA 과정을 거쳤다. 젊은 시절 그는 컨설팅회사 벤앤컴퍼니,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등에서 일하며 다양한 산업의 사업모델을 분석했고, 특히 플랫폼과 고객 데이터를 활용한 글로벌 유통 모델에 주목했다. 2000년대 후반, 그는 “한국은 디지털 소비자와 물류망 사이의 간극이 큰 나라”라는 통찰을 갖게 된다. 미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 직접 진출하기로 결심하고, 2010년 쿠팡을 창업한다.


쿠팡은 처음엔 소셜커머스 형태의 모바일 커머스 플랫폼이었다. 하지만 김 의장은 초기부터 “한국형 아마존”을 지향했고, 단순한 중개 플랫폼이 아닌 자체 물류를 갖춘 통합 유통 시스템으로의 진화를 구상한다. 창업 3년 만에 그는 로켓배송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이는 물류창고(FC), 배송인력(Coupang Man), 라스트마일 시스템 등을 모두 내부화하는 전략이었고, 당시 한국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전례가 없는 투자 방식이었다.

이 전략은 막대한 비용을 수반했지만, 김 의장은 ‘지금 손해 보더라도 고객이 감동하면 돈은 따라온다’는 철학으로 밀어붙였다. 그는 단순 배송이 아니라 ‘고객 경험’을 디자인했고, 상품 검색부터 결제, 배송, 반품까지의 전 과정을 쿠팡 시스템 안에서 통제했다. 결과적으로 쿠팡은 고객 충성도, 재구매율, MAU 등에서 업계 1위를 차지하며 급성장했고, 202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글로벌 무대에 우뚝 선다.


쿠팡 상장은 단순한 자본 유치가 아니었다. 김 의장은 쿠팡을 ‘한국 소비자 중심의 기술기업’으로 포지셔닝했고, 이를 위해 뉴욕에 상장하면서도 본사는 한국에, 서버는 한국에 두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기술을 통한 고객 경험 혁신’이었다. 이후 쿠팡은 쿠팡이츠, 쿠팡플레이, 리테일 PB브랜드 등으로 확장하며 복합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현재도 김 의장은 일선 개발 회의에 참여하고, 서비스 개선 사항을 직접 테스트할 만큼 ‘제품중심 CEO’로 남아 있다. 그는 기술, 물류, 브랜드, 데이터를 하나로 엮어 아시아 대표 이커머스 기업을 구축하고 있으며,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플랫폼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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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인생을 바꾼 터닝 포인트


김범석 의장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는 ‘로켓배송’ 체계를 구축한 선택이다. 쿠팡이 창업 2~3년 차에 접어들었을 무렵, 대부분의 동종업체들이 오픈마켓이나 소셜커머스 형태로 ‘중개 수수료’ 위주의 비즈니스 모델을 고수하고 있었다. 물류 인프라에 직접 투자하기보다 입점업체에 의존하거나 외부 배송사를 활용하는 방식이 효율적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의장은 전혀 다른 생각을 했다. 그는 “고객이 원클릭으로 상품을 보고, 누르면 다음 날 도착하는 경험이 없다면, 그건 혁신이 아니다”라고 보았다. 아마존에서 영감을 얻었지만,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한국형 로켓배송’을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곧바로 전국 물류센터 구축에 착수했고, 쿠팡맨이라는 전속 배송 인력을 채용해 ‘배송의 마지막 100미터’를 통제했다. 이 모든 인프라는 당시 수천억 원의 손실을 동반하는 고위험 전략이었다.


내부 반대도 많았다. 투자자들은 “수익은커녕 고정비만 커진다”며 우려했고, 임직원 중 일부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공공서비스냐’고 비꼬기도 했다. 하지만 김 의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 길을 가지 않으면, 결국 쿠팡은 가격으로만 경쟁하게 되고, 고객 충성도는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실제로 2014년 로켓배송이 본격화되자, 고객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쿠팡 없으면 불편하다’는 이용자 반응이 SNS에 퍼졌고, 밤 11시에 주문해도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 체험은 완전히 새로운 쇼핑 기준을 만들었다. 이 시기부터 쿠팡은 이커머스 1위 자리를 점유하기 시작했고, ‘로켓배송’은 하나의 생활 인프라처럼 자리 잡았다.

하지만 후폭풍도 컸다. 2015년 이후 쿠팡은 1조 원 넘는 적자를 매년 기록했고, 일부 언론은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김 의장은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5년 후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라며 상장 준비와 수익구조 전환에 박차를 가했다. 결국 2021년 뉴욕증시 상장을 통해 5조 원 이상을 유치하며 ‘비전의 정당성’을 증명했고, 이후 점진적으로 손익 개선에 성공했다.

이 터닝 포인트는 단지 물류 전략 하나의 성공이 아니라, “고객 경험을 중심으로 기업을 설계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을 제시한 사건이었다. 김 의장은 기업이 단기 수익을 포기하더라도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쿠팡을 유일한 회사로 만든 결정적 계기였다.


거인의 어깨와 나란히 하려면

김범석 의장에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자질은 ‘고객 중심 사고의 집요함’이다. 그는 기술, 물류, 조직, 자본 모든 결정을 오직 한 가지 기준으로 판단한다. “고객이 감동하는가?” 그 기준은 단순하지만, 실행은 결코 쉽지 않다. 특히 대규모 투자를 동반하거나 수익성이 불투명할 경우, 대부분의 경영자는 ‘타협’을 선택한다. 하지만 김 의장은 타협하지 않았다.


이 자질은 오늘날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고객을 말로만 위한다면, 고객은 외면한다. 하지만 고객의 시간을 절약해주고, 불편을 먼저 찾아서 없애준다면, 그 기업은 오래 살아남는다. 독자들이 창업가이든 팀장급 리더든, 김 의장처럼 ‘고객의 불편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진짜 혁신의 출발점이다.


또한 고객 중심 철학은 내부 운영에도 반영되어야 한다. 쿠팡은 자체 플랫폼을 활용해 CS, 반품, 배송까지 자체적으로 통제한다. 이는 고객을 믿는 게 아니라, 고객을 보호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독자들도 비즈니스를 설계할 때, ‘고객에게 무엇을 경험시키고 싶은가?’를 먼저 설정한 후, 조직과 시스템을 맞춰보자. 김 의장이 보여준 경영은 단순한 전략이 아니라, 철학이었다.

리더도 사람이다?!

한 직원이 물었다. “회장님, 도대체 쿠팡맨 유니폼은 왜 항상 땀이 잘 배어나는 소재인가요?” 김 의장은 빙긋 웃으며 답했다. “그래야 고객이 진짜 열심히 뛰었구나, 믿잖아.” 직원은 웃음을 터뜨렸고, 유니폼은 그대로 유지됐다. 고객 눈높이에 집착하는 남자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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